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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기획연재Ⅴ(소설)/추월산 길라잡이(제9화)

기사승인 2021.04.13  10:4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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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성오 작가

■ 1593년 8월
(9화)

가을 문턱을 넘어서 저녁 공기가 쌀쌀했다. 
추월산에는 산국화가 만발하여 눈을 돌리면 노란 산국이 활짝 웃으며 능주를 반겼다. 능주는 석청을 따려고 암벽지대를 향해 가고 있었다. 아카시아가 지고 나면 석청을 따지 않았는데, 민경이가 집에 석청이 바닥났다고 울상을 짓기에 어쩔 수 없이 산에 올랐다. 
능주 아버지에게는 대감이 값비싼 밀랍초를 내주었지만, 민경이는 그 정도로 여유가 없었기에 능주는 등잔불을 들고 산에 올랐다. 석청이 있다면 조금만 덜어갈 요량이었다. 능주가 덜어간 만큼을 벌이 산국화에서 보충하기 바라는 마음으로 갔지만, 점찍어 둔 자리에 벌도, 석청도 없었다. 누군가가 깡그리 훑어간 것이었다. 

실망과 허탈함에 능주는 편편한 바위에 퍼질러 앉아 심란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그때 떡배가 나타났다. 봇짐을 지고 산에 오른 떡배 표정이 너무 어두워 능주는 걱정 어린 어조로, 무슨 일로 추월산에 왔는지 물었다. 떡배는 사향노루를 잡으러 왔다고 했다. 부모님이 왜군한테 포로로 잡혀있는데 사향을 구해오면 풀어주겠다는 약조를 받았다고 했다. 사향이 워낙 귀한 약재로 알고 있던 터라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다만 두 사람의 목숨과 바꿀 수 있을 정도로 귀한 것인지는 의문이었다. 아니면 왜군들이 포로의 몸값을 그 정도로 하찮게 보는 것인지도 몰랐다.

 영남지방 말투라 자연스럽게 어디서 왔는지 물었다. 부산에서 왔다고 했다. 사향노루가 귀하긴 해도 추월산에서만 사는 것도 아니고, 그 멀리서 왔다는 것이 의아했다. 능주가 의심에 찬 눈으로 보니 떡배가 간단하게 이유를 말했다. 하루라도 빨리 부모님을 구할 생각에 가까운 산으로 갈 생각이었는데 주요 길목 곳곳에서 전투가 일어나고 있었다. 산꼭대기에서 봤는데 관군보다 의병이 많았다고 했다. 의병들은 매복해 있다가 왜군에게 기습 공격을 가했고, 공격은 낮보다 밤에 더 가열찼다고 했다. 왜군은 조총을 쏘며 대항했다. 조총 소리를 난생처음 들었는데 심장이 멎을 것 같다고 했다. 소리만으로도 공포심이 극에 달해 멀리 피할 수밖에 없었다. 사향노루도 조총 소리에 놀라 멀리 달아났을 것 같았다. 그렇게 전장을 피해, 사향노루가 서식할 만한 고산지대 암벽을 뒤지다보니 추월산까지 왔다고 했다.
  
 사향노루를 잡기 위해 산에서 잘 거라고 했다. 가을의 문턱을 넘어선 후라 밤 추위가 걱정이었다. 능주가 춥지 않겠냐고 묻자 떡배는 웃옷을 홀라당 벗어 상반신을 보이며 아직은 한참 때라서 추위는 걱정 없다고 했다. 떡배가 추위를 걱정했다면 능주는 석굴을 알려줄 생각이었다. 산중에서의 밤은 모기나 각다귀 같은 벌레나, 멧ㅤㅌㅗㅌ이나 곰 같은 야생동물보다 추위가 더 두려웠다. 여름까지는 석굴에서 자곤 했던 능주도 가을이면 어지간해서는 석굴에서 밤을 보내지 않았다. 그런데도 떡배가 산에서 밤을 보내려 것은 하루라도 빨리 사향노루를 잡기 위함이랬다. 사향노루의 사향을 가져가야 부모님이 풀려날 거라며 고된 산속 생활을 개의치 않게 여겼다.
  
 떡배에게 감동한 능주는 나이를 밝히며 형 아우로 지내면 좋겠다고 했다. 떡배도 나이를 밝혔다. 능주보다 15살 적은 스물여섯이었다. 능주가 산에서 사향노루를 잡겠다고 죽치고 있는 동안, 능주는 가끔 김치와 깍두기를 가져다주었다. 떡배는 사향노루를 보기는 보았다고 했다. 올무를 만들어 암벽의 길목에 설치해놓았지만 좀처럼 걸리지 않는다고 투덜거렸다. 못 쏘는 활이 생각난다고 했다. 의병군으로 몰려, 왜군에게 공격을 받을까봐 가져오지 않았는데, 후회된다고 했다. 능주는 활은 있으나마나라고 위로했다. 사향노루가 민첩하고, 소리에 민감해서 화살을 들고 사정거리까지 가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설령 화살로 맞추었다고 해도 사향노루가 달아나는 곳이 사람들의 접근이 어려운 절벽이라 찾기 어려울 거라고 했다. 떡배가 낙담하는 표정을 짓자, 능주가 말을 이었다.
  
 “함꾼에 어디 좀 댕게오까?”
  “어딘데예?”
  떡배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시묘살이하는 초막이여.”
  “시묘살이 하는 데를 가자꼬예?”
  떡배가 눈을 한껏 크게 떴다. 
  “내키지 않으면 안 가도 돼. 갔다 오는디만도 한 나절 이상 걸릴 텐께.”
  “왜 가는지 이유라도 알아야 가든지 말든지 할 거 아입니꺼?”
  능주는 속내를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클 텐데, 자신의 예상이 맞아떨어질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헛걸음할 수도 있능께, 그냥 쉴란가?”
  “그럴 거면 말이나 꺼내지 말던가요? 괜히 궁금하게 해놓고, 가지 말라고예?”
  “동상 부모님 때문에 문득 떠오른 생각이긴 한디, 장담은 못하겄구먼.”
  “혹시, 나에게 시묘살이 하는 방법을 알려 줄라고 그런깁니꺼?”
  “떼끼, 이 사람아! 우리 같은 팔자에 시묘살이나 할 수 있겄는가? 그런 건 아닌께 알아서 하소.”
  능주가 버럭 소리쳤다.
  “우리 부모님 때문이라는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가야하지 않겠습니꺼?”
  
 떡배가 능주를 따라 나섰다. 능주는 무거운 표정으로 앞에서 걸었다. 괜한 짓거리를 하고 있는지 갈등이 일었다. 지금이라도 떡배를 되돌려 보내야 하는 건 아닌지. 여러 번 생각이 엉켰다. 하지만 기왕지사 내디딘 발걸음을 돌리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덕령이에 대한 믿음 때문인지도 몰랐다.
  덕령이의 어머니인 남평반 씨의 묘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묘 옆에 두 개의 초막이 있었다. 아래 초막에는 남평반 씨의 차남인 김덕령이 상주가 되어 시묘살이를 하고 있었고, 위의 작은 초막은 덕령이의 시중을 들기 위해 능주가 머물고 있었다. 
  
 능주는 아버지 때부터 이대록 대감의 집에서 일을 거든 사노였다. 사복시첨정을 지낸 대감 부인 고성채 씨와의 사이에 2남 1녀를 두었는데 인경, 민경, 원경 순이었다. 세 자식 중 대감은 민경이를 유독 어여삐 여겼다. 그런 딸이 가난한 덕령이와 혼인하게 되자, 능주를 딸려 보냈다. 능주에게 민경이를 잘 돌보라고, 논 열 마지기를 선뜻 내주었다. 이례적이었다. 사노는 솔거노비와 외거노비로 갈렸다. 솔거노비는 집인 집에서 기거하고, 외거노비는 따로 기거했고 사유재산도 보유할 수 있었다. 능주는 솔거노비였다. 사유재산을 보유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첨정께서 사유지를 보유할 수 있게 베푼 것이었다. 능주는 민경이에게 열과 성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민경이를 어려서부터 모시면서 아씨, 라고 불렀던 것이 습관으로 굳어버려 민경이가 혼인을 했음에도 좀처럼 마님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민경이도 그냥, 아씨라고 마음 편히 부르라고 했다. 민경이는, 본인보다 남편인 덕령이의 안위에 더 신경 썼다. 어머니 묘에서 시묘살이를 하기로 하자, 여막 하나를 더 지어 능주에게 거기 머물면서 덕령이를 도우라고 했다. 여막은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방을 따뜻하게 할 수 있지만, 밥을 지을 수는 없었다. 능주는 때가 되면 집을 드나들며 민경이가 끓인 죽이나 민경이가 손수 지은 옷가지 등을 날랐다. 

담양뉴스 webmaster@d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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