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담양알기1/담양이야기(26)일제강점기 말 일제의 만행3

기사승인 2021.04.13  11:26:20

공유
default_news_ad2

담양이야기(26)일제강점기 말기 일제의 만행
●강제징병, 그리고 8.15해방

8월 14일 출정하라는 소집영장이 많이 나왔다. 그래서 13일 밤 이 마을 저 마을에서 출정장병 송별연을 하느라 노래를 부르며 춤추고 노는데 큰아버지께서 저를 부르시기에 나와 뵈었더니 귓속 말씀으로 “내일 모레 소화가 항복한다고 한다. 아마 출정을 정지할지도 모르니 이만 끝맺도록 해라” 하신다. 나는 깜짝 놀랐다. 이 말을 할 수도 없고 가슴이 두근두근하는데 “오늘 저녁은 이만 끝내세” 하였더니 “왜 그러는가? 좀 더 노세.” 하는 것을 “내일 일을 생각해서 일찍 자세” 하고 해산하여 집에 돌아왔으나 잠은 들지 않았다.

다음 날 14일 9시경 이곳저곳에서 일장기를 들고 장정을 에워싸고 행진곡을 부르며 나오는데 지서주임이 나오더니 “출정을 연기하였으니 되돌아가시오” 한다.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상하다고 수군수군 하면서 삼삼오오로 헤어졌는데 다음날 8월 15일 해방의 종소리가 울리자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하면서 기뻐서 어찌할 줄 모르고 “이렇게 좋은 세상에 그저 앉아 놀기만 하겠는가. 소 한 마리 잡아서 술 먹고 노세. 저 마을에서는 돼지 잡아서 논다네.” 하며 인심이 확 풀리니 좋은 세상 처음 보니 이런 세상이 오래도록 길게 가면 좋겠다 싶었다.
그때 벼 한 섬에 십 원, 소 한 마리 백 원 하던 것이 날이면 날마다 값이 오른다.
나는 면서기가 어찌나 싫었던지 해방 즉시 사표를 내고 상업으로 바꾸고자 서울로 올라가 두루 살펴보니 고무신 장사가 썩지도 않고  좋은 것 같아 몽땅 구입하여 광주천 자갈 밭(지금 양동시장 옆)에 상인들이 모여서 장사를 하기에 그곳에 자리 잡고 고무신을 파는데  잘 팔려 수입이 좋았다. 

나는 서울로 물건을 가지러 올라가면서 집에 들었더니 면사무소에서 매일 찾고 있으니 나가보라고 한다. 면에는 사무인계를 깨끗이 해주었는데 무슨 일일까 하고 나갔더니 그동안에 인민위원회에서 담양군수에 정경인 씨, 월산면장에 임종열 씨가 임명되어 사무를 추진하려고 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어서 나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매일 기다렸다는 것이다. 내가 사표를 낸지 5개월이 다 되는데 무슨 말이냐고 해도 사정을 하면서 서류를 보여주는데 일반행정 사무도 많이 밀려 있지만 호적사무는 태산 같이 쌓여 있었다. 이토록 밀린 사무를 보고도 모른다고 할 수도 없고 사정이 범보다 무섭다고, 할 수 승낙을 하고 우선 급한 사무를 그날부터 정리하다보니까 야근까지 해야 했다.

※ 이 글은 당시 면서기를 했던 정회원 님의 증언이다.(출처: 담양향토문화연구회, 『50년대 격동기의 진상』)/ 담양뉴스

담양뉴스 webmaster@dnnews.co.kr

<저작권자 © 담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