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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알기3/담양의 인물(26)돈암 이석손

기사승인 2021.04.13  11:3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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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의 역사인물(26/돈암 이석손(1397∼1481)

월산사


이석손의 초명은 중손, 자는 사언, 호는 돈암(遯菴)으로 이요의 아들이다. 
배우자는 충순위대호군 돈재 박연생의 딸 태인박씨(泰仁朴氏)이다. 돈암은 경주이씨 익재 이제현의 후손으로 태조6년 서울에서 출생해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이미 5세 때에 시를 지었으며 야은 길재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혀 사서오경에 통달했다. 
  
세종 때 집현전 저양에 발탁되어 옳고 그름을 임금님께 아뢰는 임무를 시작으로 시강(侍講) 청환현직(淸宦顯職)을 두루 거처 좌빈객 정이품 벼슬에 올랐다.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자 통분, 관직을 버리니 좌의정 권람이 만류하였으나 돈암은 ‘초지일관 일편단심(初志一貫 一片丹心)’이란 글을 써놓고 장인 대호군 돈재 박연생과 함께 1453년 담양으로 낙향해 월산면 월산촌에 은거했다. 
세조 때 예조참의 정삼품에 임명했으나 응하지 않고 단종의 비통한 운명과 어지러운 세상을 한탄하는 ‘망세음(忘世吟)’이라는 시를 지어 매월당 김시습, 문두 성담수와 친교를 맺고 경해록(經解錄)을 저술해 후학들에게 강론했다. 또 가덕산 자락의 황무지를 개척해 후예들의 보금자리 터전을 마련했다.
중종 때에 정이품.이조참판을 증직했고, 1826년.담양 월산사에 봉향됐으며, 1904년 충남. 공주의 국립공원.계룡산 숙모전 동무에 배향됐고 돈암회관 광장에 신도비가 세워졌다. 담양의 월산사는 돈암 이석손이 은거한 곳에 1788년(정조12) 도내유림들이 발의하여 충효학덕(忠孝學德)을 추모하기 위해 월산마을에 사우(祠宇)를 창건했다.
  
이석손이 담양의 솔대봉 아래인 월산리(月山里)에 낙향한 이후 550여년이 지난 현재 담양 월산면의 월산리, 동산리, 월평리 등에 후손들이 경주이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이석손의 저서로 ‘경해록(經解錄)’ 2권과 ‘망세음(忘世音)’ 1권이 있다.(참고: 문중 돈암선생 행장) / 담양뉴스

담양뉴스 webmaster@dnnews.co.kr

<저작권자 © 담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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