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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지역밀착형 기사/귀농일기(32)

기사승인 2021.06.14  10:3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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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농인 정상원 님의 “편견 타파의 기치를 세우고”

명퇴라는 말이 언제부터 화두가 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명퇴 바람이 언제부터 강하게 휘몰아쳤는지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명퇴라는 말이 진로 결정에 크게 작용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학과 선택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문제였다. 우선 입학하고 보자고 점수에 맞춰서 학과를 결정한 친구들이 많았지만 나는 점수보다 안정적인 경제생활을 할 수 있는 직업을 우선순위에 넣었다. 공무원이 아닌 이상, 50대 초반이면 누구나 명퇴에 내몰리게 된다는 말이 친구들 사이에 회자되었다. 속칭 신의 직장이라고 부르는 은행이나 공기업에 입사해도 명퇴의 칼날은 피하지 못할 거라는 말을 자주들었다. 그 말에 내가 50대 초반이었을 때의 미래를 머리에 그려보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 기른다는 가정 하에 미래를 점검한 것이었다.
50대 초반이면 한참 돈이 들어갈 것 같았다. 요즘의 대세를 따라 정상적인 절차를 거쳤을 경우라도 그랬고, 자칫 결혼이나 출산이 늦어지면 50대 초반을 훨씬 넘긴 나이에도 지출이 왕성한 시기라는 사실이 크게 다가왔다. 직장 생활을 하기 위한 학과를 선택하기가 심히 걱정되었다.
  
내가 진로를 고민할 시기에 아버지가 귀농하려고 다양한 정보를 수집했다. 
아버지 영향으로 나도 자연스럽게 농업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탐독했다. 정보를 수집하기 전에는 힘들고, 어렵고, 돈이 되지 않은 산업분야라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보를 접하고 인식이 달라졌다. 농업이야 말로 명퇴 걱정이 없는 분야였다. 비록 몸은 고될지라도 노력한 만큼, 부지런을 떠는 만큼 소득으로연결된다는 사실을 알고 인식을 바꾼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직 내 의지로 농업경제학과로 진학을 결심했다.
내가 농업경제학과를 선택한 또 한 가지의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농사는 힘들다는 편견을 타파하는 것이었다. 농사를 짓는 부모라면 십중팔구는 자식이 농사짓는 걸 반대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농업에 종사하신 분들마저 그런 정도이니 비 종사자들이 바라보는 시각은 어떻겠는가. 내가 그랬고, 내 또래들이 그랬던 것처럼 농사는 힘들고 돈이 되지 않은 산업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정말 어렵고, 돈이 되지 않은 산업분야일까. 내 판단으로는 아니었다. 그래서 이런 편견을 불식시키고도 싶었다. 아버지가 귀농해서 얻는 소득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으니 확신할 수 있었다. 농업에 뛰어드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아버지도 적극 추천했다. 농업은 충분히 도전해 볼 가치가 높은 분야였다. 내친구나 지인들에게만 이라도 농업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깨우쳐주고 싶었다. 아버지가 농업에 종사해서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무리 입으로 떠들어댄들 누가 믿을 것인가. 내가 번듯하게 성공해야 말이 통할 것이다. 나는 나를 아는 모든 이에게 농업의 비전을 당당히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직접 농업 현장에 뛰어들어야 했다. 예비 귀농인들에게 이정표 역할을 하고 싶었다.

표고버섯 하우스에서

나는 현재 아버지와 함께 표고버섯을 재배 중이다. 
표고버섯 재배 동 옆, 하우스 두 동에 신품종 포도인 샤인머스켓을 식재했다. 작년이었다. 포도는 아직 생초보라 많은 분들께 노하우를 전수받고 있다. 젊은 사람이 농사 짓는다는 사실 때문인지, 다들 기특해 하면서 성심성의껏 지도해 주신다. 그 분들의 지도가 빛이 바래지 않도록 노하우를 가슴 깊이 새기려고 노력한다. 여래를 수확하기까지, 수확 이후로도 배울 게 많아 포도에 대해서는 할 말이 그다지 없다.
표고버섯은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 학교 다니면서 아버지를 틈틈이 도운 것이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되었다. 내가 학교 다닐 때부터 표고농장을 자주 드나든 이유는 환경 탓이었다. 표고버섯은 너무 더워도, 너무 추워도 생산량이 떨어진다. 우리 농장에서도 온도와 습도 유지를 무엇보다 중요시 한다. 20도 전후가 최적 기온이고, 최적 기온을 유지하려고 조절하기에 하우스 안은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농장에 들어서면 따뜻하고, 시원해서 좋았다. 손이 많이 가는 작물이라 힘든 점도 있지만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크게 어렵지도 않았다.

담양에서 농사를 짓다보니 단점도 있었다. 농촌에 젊은이가 없다는 것. 
지금까지 느낀 것 중 가장 큰 아쉬움이다. 저녁에 만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친구들이 가까이 없으니 만날 장소는 어김없이 광주였다. 담양에서 광주가 가까워서 큰 불편은 없지만, 굳이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다. 하지만 냉정히 따져보면 약속장소인 광주에서 광주로 이동하는 것과 담양에서 광주로 이동 하는 것은 별 차이가 없어 불만도 아니다. 이모가 영암으로 귀농했는데 농업 인푸라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아 불편하다고 자주 호소하는데, 담양은 그런 불편도 없다. 2019년에 청년창업농으로 선정되어 보조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으니 경제적 어려움도 없다.

나는 오늘도 성공한 농업인이 되려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다. 
내가 성공해야 나를 아는 사람들의 편견이 달라질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경험으로-비록 농사 경험이 짧지만-젊은 예비 귀농인들에게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다. 농사가 결코 힘들고, 돈이 되지 않는 분야가 아니고, 농업이야 말로 도전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을./ 강성오 군민기자

※ 1993년생 정상원 님은 2019년 수북면 강동길로 귀농했다.(연락처 : 010-2665-8315)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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