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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종의 詩이야기/ 詩의 향기,삶의 황홀(23)

기사승인 2022.01.24  10: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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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그리고 수선화에게

설날이 다가옵니다. 대선도 다가옵니다. 이럴 때는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정희성의 따뜻한 사랑시 한 편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정희성 시인은 경상남도 창원 출생으로,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습니다. 「저문 강에 삽을 씻고」, 「답청」 등의 시집이 있지요.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 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정희성,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꿈이 있는 민족은 망하지 않는다는 경구가 생각납니다. 비전이 없는 개인이나 사회 혹은 국가는 절망하고 타락하게 됩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서로 그리워하지 않는 사랑은 궁극에는 파탄을 부르기 마련이지요.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라는 제목이 붙은 이 시는 숫제 사람이 각각 그리움이라고 말해버립니다. 어느 날 한 그리움인 당신과 또 다른 그리움인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 있다면, 또한 그러한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토로합니다.
 만약 그렇기만 한다면 ‘나’는 기다리겠다고 말합니다.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 볼 수 있기를 기다리겠다고 말합니다. 슬픔이 슬픔에게 손을 주는 순간 그리움은 다시 더 큰 그리움이 되어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사랑을 춥게 하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기를 희망하는 한 그 사랑은 결코 파탄을 부르지 않습니다.
 이런 그리움과 그리움의 애절한 눈길을 분리하는 세력들은 정치인들입니다. 지금 대선 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영 간의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싸움을 한번 보십시오. 권력의 악귀들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펼치는 지옥도는 우리가 그들하고 동시대를 산다는 것을 부끄럽게 할 뿐입니다. 선거에 대한 거부욕망이 가슴뿌리로부터 올라옵니다. 그러나 그리움을 간직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외롭고 긴 기다림일지라도 끝내는 그리움으로 만나 하나의 꿈의 비단 폭을 엮고야 말 것입니다.  
 이 시에서 날과 씨는 참으로 아름다운 우리말입니다. 날은 피륙, 돗자리를 짜거나 짚신, 미투리 따위를 삼거나 할 때 세로로 놓인 실, 노끈, 새끼 따위를 말하고 씨는 그 반대로 가로로 놓인 것을 말합니다.

 설 지나면 곧바로 동구 어귀나 울타리 가에 겨울을 이기고 제일 먼저 피는 봄꽃이 있습니다. 수선화입니다. 저에게도 「수선화, 그 환한 자리」라는 시가 있습니다만, 오늘은 정호승의 수선화 시 한 편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정호승 시인은 1950년 대구에서 태어나 1973년 <첨성대>라는 시로 문단에 나왔습니다. 「슬픔이 기쁨에게」,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등 대중친화적인 시집들이 있습니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정호승, 「수선화에게」

 수선화는 이른 봄, 아직 맵찬 바람 속에서 피어납니다. 파리한 줄기 사이로 노란 꽃을 피워 올리는데 꽃잎이 너무 여립니다. 그렇게 여리디여린 꽃이 겨울을 이기고 이른 봄에 다른 꽃보다 먼저 피어나느라 얼마만큼의 의지를 세웠겠습니까. 의지를 세우는 일은 외로운 일입니다. 어떤 일을 성취하는 데 있어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상태에서 의지 있게 나아가는 일은 외로움과 고투하는 일입니다.
 이런 수선화의 생리를 잘 알기에, 시인은 수선화를 보고, “울지 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이라고 단정적 진술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고 할 지경인데, 세상에 외롭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실 어느 새가 나뭇가지에 오도카니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그것을 보는 내가 외로워집니다. 수선화 같은 어떤 여자가 물가에 망연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나 자신이 더더욱 외로움에 사무칩니다. 그러기에 산 그림자도 저녁이면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오고, 종소리도 외로워서 멀리 울려 퍼지는 것이라는 시인의 진술이 공연한 얘기로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이 원래 외로움으로 피조된 존재이기에 이런 인간의 존재론적 고독을 일상의 현실로 받아들이고 외로움을 견디고 살아가는 일은, 그러기에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갈 뿐인 것입니다. 이미 마음이 돌아서서 떠나가 버린 사람의 전화나 공연히 기다리는 일은 그만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외로움을 묵묵히 견디고 나아가면,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쯤은 ‘너’를 지켜보리라는 것이지요. 아니 하느님도 눈물을 흘리시며 우리를 지켜보시겠지요.    
 여기서 “공연히”라는 부사는 한자어 ‘空然’이라는 말에 ‘히’라는 어미가 붙어 된 말로 ‘공연하게’ ‘공연스럽게’라고도 쓰이는데, “까닭이나 필요가 없다, 객쩍고 부질없다”의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의 준말이 ‘괜히’ ‘괜스레’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담양뉴스 webmaster@d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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