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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고필의 문화에세이(23)

기사승인 2022.01.24  10: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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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고필(문화기획가, 향토사전문책방 이목구심서 대표)    

배움의 장으로서 해동문화예술촌의 만남

며칠 전 해동문화예술촌에서 공연예술창작과 지역문화활성화 관련 워크숍이 있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아르코 공연 연습장이 만들어진지 2년차에 접어들면서 공연예술 전반에 대한 흐름과 지역의 대응태세 등을 점검해 보고 나아가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작금의 공연은 언제나 그런 것처럼 움추주들어 있는 상황이다. 가장 큰 것은 코로나 19라고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더라도 한사코 어렵사리 지탱해온 것이 공연계의 현실이다. 그런 이유들이 무엇일까 따져 보는 것조차 헛된 망상일지라도 그럼에도 살펴보아야 한다. 

 지역의 공연계는 무엇을 중심으로 모여 있을까? 
그 하나는 전통문화의 계승이라는 큰 뜻으로 모여진 판이 있고, 대중 예술과 관련하여 모여진 그룹과 개인이 있다. 거기에 취미와 여가를 통한 성취동기를 얻기 위한 모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담양의 풍성한 문화를 꽃피워온 자락에는 이런 예인들의 활동이 도드라진 것이고, 그 뒤편에는 이들에 대한 후원인들이 든든하게 자리했던 연유였다. 

 하지만 오늘날의 상황은 예전과 같지 않다. 남몰래 예술인을 챙기거나 모두가 보는 앞에서 예인을 불러 몇날 며칠 난장을 펼치던 후견인들의 시대는 저버리고, 대부분 자생적으로 활동하거나 어쩌다 부르는 지역 자치단체, 혹은 중간지원조직의 행사에 초청되어 지는 것 외에는 비빌 언덕이 없다. 물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전남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등의 지원사업이 있긴 하지만 우리 지역의 예술단체가 공모해서 지원 사업을 가져오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정말 열심히 현업에 종사하면서 도모함에도 이런 노력은 평가에서 고려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으로 그친 것이다. 지원단체 입장에서도 이런 안타까움을 아는지라 “지역할당제”라든가 “지역 최소 보장제” 같은 트랙을 운용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지역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안타까움에 공감하는 공연기획자를 비롯한 평론가, 현장 운영자, 무형문화재 선생님들과 고군분투중인 지역활동가 분들이 머리를 맞대고 서로의 경험과 앞으로의 전망을 함께 논의하는 마당으로 워크숍이 이뤄진 것이었다. 코로나 상황으로 많은 분들이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시종일관 주고 받는 이야기에는 현실의 냉혹함과 그 냉정함을 이겨나가고자 하는 예술인들의 기질을 읽어 나갈 수 있었다.

 우리 지역 봉산면 출신의 진옥섭 전.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은 노름마치라는 책을 통해 만났던 문화기획자로서 공연예술계에서는 그 이름을 모르는 이들이 없을 정도로 활동해왔는데, 기꺼이 전체 판을 이끌며, 현장에서 함께 공유해야 할 경험들을 나누게 해 주었다. 
문화기획을 주업으로 하는 내 입장에서도 밑줄을 긋고 메모하며 들었던 몇가지를 지면을 통해 나누고 싶어진다. 
첫 번째는 주재연 감독의 판소리 다섯마당 프랑스 완판 공연의 자막에 관한 이야기였다. 한국인도 완판 공연을 보지 않는데 이질적인 문화인 동양의 판소리를 들을까 고민한 감독은 번역을 위해 4명의 전문가를 초대하고 번역비만 1억2천만을 요구했다고 한다. 당연히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산이 없어 2천만원에 끝내라고 하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프랑스에서 그 재원을 마련해 주어 번역을 하는데, 번역가들에게 요구한게 점입가경이었다. 프랑스의 전라도 같은 곳이 어디냐고 묻고 그곳이 액상 프로방스라는 지역이라고 하니 그 지역말에 가깝게 번역하고, 주요한 산과 강은 유럽의 지명으로 바꿔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연은 전석을 매진시키고, 프랑스인이 한국의 판소리에 감흥하는 최고의 순간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노름마치라는 공연단을 이끌고 있는 김주홍 대표는 사물놀이에 감동하여 입문하게 된 공연의 세계에서 어느 날 문득, 나는 누군가가 짜준 판을 답습하는 앵무새가 아닌가 라는 의문을 품고 끊임없이 새로운 창조를 위해 사물에 타악 요소와 굿의 요소를 가미하며 소리굿의 새로운 신기원을 열어 나간 경험담을 들려주셨다. 이런 노력이 노름마치를 국제적인 무대에서 더 승승장구하게 하는 요소가 되었고, 유럽과 미주에서 각광받는 공연단체로 포지셔닝하게 된 계기임을 말씀하시며 담양의 풍부한 인적 자원과 문화사적 매락을 어떻게 재창조할 것인지 화두를 던져 주었다. 무형문화재인 고성오광대의 이윤석회장님 또한 남들이 손가락질 하는 한량판에 들어와 오로지 진심으로만 일해왔던 초창기 시절부터 여태 성실함과 정으로 이끌어와 전국에서 가장 단단한 전수관을 가진 단체로 돋움하기 까지의 간난신고를 털어 놓으셨다. 

 예술의 힘이 발원하는 그 첫 장이 오로지 사람에 있음을 다시 느껴보는 시간. 나는 내 자신 말고, 나의 주변 사람들을 위해 지금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로 귀결된 반전의 시간, 모든게 털려 버린 시간이 아직도 쟁쟁하다. 

담양뉴스 webmaster@d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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