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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기획연재Ⅴ(소설) 추월산 길라잡이(제34화)

기사승인 2023.02.22  11: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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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는 『기획연재Ⅴ/소설』로 2020담양 송순문학상 수상작인 강성오 작가의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를 월2회 연재중입니다.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는 임진왜란 당시 우리지역 출신 의병장으로 활약했으나 억울하게 처형됐던 김덕령 장군의 아내와 주변 인물들의 비극적인 삶을 형상화한 소설입니다. / 편집자 주.

                               9. 1594년 2월 
(34화) 
정신을 차려야 했다. 돌무덤에 제를 올려야 했다. 성복제, 발인제, 노제, 사토제, 평토제는 못 지냈지만, 성분제만은 올리고 싶었다. 성분제가 후한이 없도록 신께서 지켜 주기를 비는 제사인데, 빠트릴 순 없었다. 제수음식이 필요했다. 편, 전, 과일, 생선, 저육, 한과 등의 격식을 갖춘 상은커녕, 제사상에 가장 기본으로 올라가는 삼색 나물도 없었다. 아득했다. 아내와 자식이 가는 마지막 길에 맹물이라도 올리고 싶었다. 물이 있는 석굴이 떠올랐다. 
다행히도, 천만다행하게도, 주먹밥 두 덩어리가 망태기에 남아 있다는 것이 함께 생각났다. 아침에 아내와 먹을 요량으로 남겨둔 주먹밥이었다. 아내가 챙겨온 주먹밥이었다. 하마터면 무덤 앞에 물만 떠놓을 뻔했는데, 주먹밥이 있다는 사실에 그나마 위안을 받았다. 게다가 부싯깃도 망태기에 있었다. 
  
능주는 석굴에서 망태기를 챙겨 와 주먹밥을 돌무덤 앞에 각각 놓았다. 무덤에 절을 올려야하는데, 절을 하는 동안 짐승이 덮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망치로 정을 두드리며 절할 수는 없어 망설이고 있는데 보리암에서 타종 소리가 들려왔다. 능주는 망치와 정을 손에서 내려놓았다. 타종소리에 산짐승들이 함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었다. 마음 놓고 제사를 준비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었다. 부싯돌로 불꽃을 만들어 부싯깃에 붙였다. 부싯깃을 두 개의 돌무덤 가운데에 놓았다. 향을 대신한 것이었다. 그리고는 정중하게 절을 올렸다. 절을 두 번 하고 나서, 능주는 목이 잠길 때까지 목 놓아 울었다. 그리고는 주먹밥 두 개를 입에 밀어 넣고 꾸역꾸역 씹었다. 산짐승이 밥 냄새나 피 냄새를 맡고 찾아와 돌무덤을 파헤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밥이라도 씹어 삼켜 흔적을 없애려 했지만, 도무지 삼켜지지가 않았다. 목이 메어 삼킬 수가 없었다. 밥덩이를 씹으며 능주는 소리 없이 오열했다. 비탄의 울부짖음이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타종 소리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었다.
 
그 사고 후로 능주는 추월산에 한동안 가지 못했다. 망태기에 단지를 넣고 집을 나섰지만, 산기슭에서 빙빙 돌며 시간을 때우다 돌아오곤 했다. 그러기를 2년째 하고 나니 집에 꿀이 한 방울도 남지 않았다. 귀한 손님이 오셨다고 대감이 석청을 찾았지만 없다고 하자 불호령이 떨어졌다. 능주는 어쩔 수 없이 곧장 추월산으로 달려가야 했다. 

  아내 생각에 능주는 자기도 모르게 눈시울이 촉촉이 젖어 있었다. 어느덧 석굴이 눈앞에 나타났다. 어디선가 짐승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여태 아내를 생각하면서 걸었던 터라, 바짝 긴장했다. 산이 낮으니 범은 아닐 것이다. 곰이 아닐 가능성도 컸다. 멧돼지, 늑대, 삵, 여우일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범이나 곰이 아니라도 야생 짐승이 위험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능주는 허리춤에서 단검을 꺼내 들고 소리에 바짝 신경 썼다. 전방의 험준한 바위 위에서 희끗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자세히 보니 늑대 다섯 마리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귓바퀴를 쫑긋 세우고, 꼬리를 늘어뜨리고 있는 늑대 눈에서 뿜어 나오는 광채 때문에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능주는 얼어붙은 듯 꼼짝하지 못했다. 늑대가 언제 덮칠지 몰랐다. 늑대가 덮치지 못하게 하려면 눈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아버지가 귀가 닳도록 일렀다. 

아내를 죽게 한 늑대를,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았다. 그래서일까. 늑대가 움직이지 않고 능주 눈만 보고 있었다. 이렇게 눈싸움만 하다가는 날이 꼴딱 샐지도 몰랐다

담양뉴스 webmaster@d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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