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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알기3/ 담양의 역사인물(60) 조선초 충신 문정공 김자지(金自知) 

기사승인 2023.03.24  11:4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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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알기3/ 담양의 역사인물(60) 조선초 충신 문정공 김자지(金自知)

▲김자지의 묘소

김자지(1367~1435년)는 고려말과 조선초 문신, 성리학자이며 평안도관찰사, 형조판서, 개성부유후 등을 역임했다. 사후에 문정(文靖)공 시호를 받았으며 담양 수북면 나산리 삼현사(三賢祠)에 고려말 밀직제학을 지낸 아버지 김도(金濤), 동생 문익공 김여지(金汝知)와 함께 3부자가 배향됐다.

김자지(金自知)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원명, 호는 일계(逸溪). 밀직제학 김도의 아들이다.
고려 우왕 때 과거에 급제해 1404년(태종4) 사헌부 집의가 되고, 1407년 우사간대부(右司諫大夫), 1408년 형조참의 벼슬에 올랐다. 1418년 경기도 관찰사, 호조참판, 이듬해에 형조참판을 거쳐 예조참판을 지냈고 이어 대사헌·원주목사를 지냈다. 1423년(세종5)에는 평안도관찰사, 1428년에는 형조판서에 제수됐다. 

대사헌 재직시 세도공신(勢道功臣)을 탄핵하는 상소를 5차례나 올린 일은 유명하다. 김전의 증조부이고, 중종 때의 영의정 김근사와 김감의 선조이다. 또한 중종 때의 권신 김안로의 고조부이고, 김제남과 인목대비의 선조가 된다. 

만년에 개성부 유후(留後)를 지내다가 1434년 68세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묘소는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 왕창리 산27에 있으며 양평군 향토유적 제30호로 지정됐다.

김자지는 학문이 뛰어나 음양·복서(卜筮)·천문·지리·의약·음률에 이르기까지 통달했다. 배불론자(排佛論者)로 유교를 숭상했으며 자신의 상(喪)을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따르도록 여러 아들에게 유언했다. 

한편, 삼현사(三賢祠)는 담양군 수북면 나산리에 있던 서원(書院)이다. 
고려 밀직제학 나복산인 김도(金濤∼1378)와 그의 두 아들 문정공 김자지(金自知), 문익공 김여지(金汝知)의 학덕과 절의를 추모하여 창평 등 호남일대의 유림들이 위패를 모시고 춘추로 제사를 올리며 아울러 후학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던 곳이다. /담양뉴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저작권자 © 담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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