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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Ⅴ추월산 길라잡이(제36화)

기사승인 2023.03.28  10:5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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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기획연재Ⅴ추월산 길라잡이(제37화)

담양뉴스는 『기획연재Ⅴ/소설』로 2020담양 송순문학상 수상작인 강성오 작가의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를 월2회 연재중입니다.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는 임진왜란 당시 우리지역 출신 의병장으로 활약했으나 억울하게 처형됐던 김덕령 장군의 아내와 주변 인물들의 비극적인 삶을 형상화한 소설입니다. / 편집자 주.

                               9. 1594년 2월
(36화)
  거북바위 석굴에서 눈을 붙이고 있던 능주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잠결에 늑대 무리의 울음소리를 들은 탓이었다. 능주는 등잔불이 꺼졌는지부터 살폈다. 바람에 흔들리고 있지만 꺼지지 않았다. 쉬지 않고 걸은 통에 거북바위까지 헐근거리며 올랐다. 피로가 채 풀리지도 않았는데 늑대 소리에 눈을 뜬 능주는 자기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늑대가 마치 여기 먹잇감이 있다고 다른 무리를 부르는 듯했다. 등잔불이 있어 들어갈 수 없으니 지원을 바란다는 울음처럼 느껴졌다. 능주는 단검을 오른손에 쥐었다. 단검으로 한두 마리는 몰라도 늑대 무리 전체를 제압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능주는 왼손으로 막대를 집어 들었다. 어제 늑대를 만난 후 느낀 게 있어, 잠들 기 전에 준비한 것이었다. 막대 끝에 천을 친친 감아 송진을 잔뜩 발랐다. 관솔이었다. 짐승의 수상한 움직임이 감지되면 관솔에 불을 붙여 석굴 입구에서 짐승의 난입을 막을 생각이었다. 불이 있으면 짐승이 접근하지 못한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미리 불을 밝혀놓으면 좋으련만, 관솔이 무한정 타지 않기에 미리 밝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능주는 늑대의 움직임이 감지되면 불을 붙이려고 등잔불 가까이 관솔 막대를 들고 바깥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늑대 무리의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드디어 늑대 울음소리가 그쳤다. 동이 트기 시작해 늑대가 자취를 감춘 것 같았다.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 그동안 단검과 막대를 손에서 놓지 않아 근육이 굳어져 있었다. 단검과 막대를 바닥에 놓고 팔을 흔들어 근육을 풀었다. 긴장이 풀리자 오줌보가 터지기 직전이라는 게 느껴졌다. 석굴 밖으로 살짝 머리를 내밀고 바깥을 살폈다. 희끄무레한 어둠이 깔려 있었다. 조심스럽게 나가 바지춤을 내리고 오줌을 갈겼다. 아내가 소변을 보다 변을 당했으니, 능주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오줌을 쌌다. 오줌을 누는데 한참이나 걸렸다. 바지에 오줌을 저리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긴장한 탓에 피로가 급격히 몰려왔다. 쉬었다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다시 짐을 챙겨 석굴을 빠져나갔다. 다리에 힘이 풀려 잠깐 휘청, 했다. 늑대는 온 데 간 데 없었다. 능주는 아내가 늑대로부터 자기를 지켜주었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아내별을 찾았다. 아내별이 어느 것인지 모를 정도로 하나같이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밤새 늑대로부터 자신을 지켰던 긴장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침은 또 그렇게 어김없이 밝아오고 있었다.

  능주가 채기산 옥녀봉에 다다른 것은 해시가 다되어서였다. 드디어 고생이 끝난 것 같았다. 옥녀봉에서 남원까지는 내리막길이니, 힘든 여정은 없을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남원으로 내려가고 싶지만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늑대 때문에 제대로 쉬지도 못해 축 늘어진 몸으로 걸어오느라 탈진하기 직전이었다. 먹을 거라도 넉넉했다면 원기가 남아있을 텐데, 첫날은 주먹밥으로, 그 후로는 고구마를 구워 시장기를 달랬다. 지금도 허기 때문에 서 있기조차 버거울 정도였다. 그게 아니라도 서둘러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지금 내려가면 모두 잠에 빠져 있어 장군이 머물고 있는 최담년의 집이 어디인지 물어볼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야밤에 대문을 두드리고 자는 사람을 깨워서 물어볼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튼 고생이 끝났다는 생각에 마음은 편했다. 능주는 가벼운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소나무에만 이파리가 달려있을 뿐, 나무마다 휑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마치 조선의 현실을 보는 듯했다. 

  저녁에 머무를 장소를 찾아 옥녀봉 일대를 살폈다. 짙은 어둠에 덮인 기암괴석들이 죄다 거무틱하게 보였다. 정상인 고정봉도 검게 보였다. 석청을 찾아 채기산을 두 번 올랐기에 낯익은 모습이었다. 누울 만한 석굴의 위치도 알고 있었다. 석굴에 맹수가 들어있을지도 모르나, 두 번에 걸쳐 확인 한 건 맹수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범이나 호랑이 똥 같은 것이 눈에 띄지 않았다. 산이 높지 않고 험준한 지대라 맹수들이 안식처로 여기지 않았는지도 몰랐다. 늑대 울음도 들리지 않고, 오면서 관솔에 송진을 듬뿍 발라 놓았으니 적이 안심이 되었다.
  석굴로 발길을 돌렸다. 여남은 발을 걸었을 때였다. 바위 등걸 뒤에서 사향노루가 갑자기 튀어나와 능주 앞을 날쌔게 지나갔다. 능주는 자기도 모르게 털썩 주저앉았다. 단지, 사기병, 등잔이 깨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 낭패였다. 지금까지 얼마나 조심히 다루었던 단지였던가. 그런데 너무도 허망하게 깨져버리고 말았다. 다치지 않았다고 안도의 한숨을 쉴 수가 없었다. 놀란 가슴에 분노와 허탈감이 일렁거렸다. 사향노루가 저주스러웠다. 야 임마! 고산지대에 사는 놈이 왜 이렇게 낮은 데까지 내려왔어. 미쳤어? 발정 나서 미쳐버린 게야! 능주는 사향노루가 사라진 방향을 보고 고래고래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어떤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늑대 무리 때문이었다. 

  늑대 무리가 사향노루를 향해 득달같이 ㅤㅉㅗㅈ아갔다. 얼핏 보아도 일곱 마리는 넘어 보였다. 늑대들이 눈에 불을 밝히고 사향노루를 쫓느라, 능주 옆을 순식간에 지나갔다. 능주는 놀라서 또다시 철퍼덕 주저앉았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전에 사향노루의 단말마가 귀에 들려왔다. 소름이 끼쳤다. 사향노루가 아니었다면 늑대 무리가 능주를 덮쳤을지도 몰랐다. 그랬다면 사향노루의 단말마가 아닌, 능주의 비명이 채기산에 울려퍼졌을 것이다. 어쩌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었을지도 몰랐다. 능주는 오들오들 떨다가, 한참 후에야 몸을 일으켰다. 

  엉덩이에 찐득함이 느껴지고, 석청에 발효된 마늘 냄새가 콧속을 파고들었다. 석청 향은 감미로운데, 그 향기로움이 마늘 냄새에 묻혀버렸다. 아주까리기름 냄새도 섞였다. 엉덩이도 축축하고, 냄새도 고약해 능주는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깨진 건 둘째 치고, 냄새와 끈적임도 문제지만 추위가 더 큰 문제였다.

  시간이 흐르자 하체에 냉기가 엄습했다. 추위가 온몸으로 퍼졌다. 으스스 몸을 떨었다. 여벌이 있다면 갈아입을 텐데, 챙겨오지 않았다. 이런 상활을 예상하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축축한 옷을 입고 잠들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얼어 죽어 어떤 짐승의 먹이로 전락할지 몰랐다. 더넘스러운 철릭과 직령을 잠깐 입을까도 생각했지만 철릭과 직령 역시 아주까리기름이나 석청에 젖어 있을 게 뻔했다.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 오직 하나, 움직이는 것뿐이었다. 스스로 몸에 열기를 일으켜야 했다. 어둠을 헤치고 산을 내려가야 했다. 산기슭 송대천에 도착해 옷을 빨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바지가 마르기까지 오들오들 떨고 있어야해, 포기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 하나가 유난히 밝았다. 가장 밝아서 스스로가 점찍었던 아내별을 보고 속삭였다. 끝까지 지켜줄 거지. 별을 보고 희망을 새기려 했는데 오한이 밀려왔다. 별에서 시선을 거두고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잔가지를 헤쳐 가며 산길을 내려갔다. 단지가 없으니 그나마 과감히 발을 내딛을 수 있게 되었다. 어느덧 아주까리기름과 마늘 냄새에 익숙해졌다. 

  마을에 당도했을 때, 온몸이 땀벌창이 되었다. 땀으로 바지가 축축한 것인지, 석청 때문에 축축한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마을은 아직도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홰치는 소리도 들려오지 않고, 개 짖는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인기척이라도 있으면, 왜군으로 오해받는 한이 있더라도 대문을 밀고 들어가, 도움을 요청할 텐데 인기척도 없었다. 밤고양이만이 천적을 만난 듯 황급히 지나갈 뿐이었다. 지칠 대로 지친 능주는 마구간이라도 좋으니 추위를 피해 날이 밝을 때까지라도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들어갈만한 곳이 있는지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들어오라고 대문을 활짝 열어놓은 집이 없었다. 오히려 왜군 때문에 더욱 꽁꽁 잠근 듯했다. 담장을 넘지 않는 한 마구간에서 쉰다는 것도 불가능했다. 능주는 어쩔 수 없이 마을을 어슬렁어슬렁 배회했다. 

  “혹시, 최담년 대감 댁을 아시는지요?”
  꼭두새벽에 대문 밖을 나온 젊은 남자를 붙잡고 정중하게 물었다. 차림으로 보아하니 그 남자도 노비 같았다. 
  “아니, 이게 뭔 냄새다냐? 똥 싼 거 아니요?”
  남자는 손으로 코를 막고, 능주 뒤태를 보았다. 그리고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냉큼 벗어나 버렸다. 정말로 똥을 쌌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긴히 전할 게 있어서 그란디, 최담년 대감 댁이 어디에 있담감요?”
  비슷해 보이는 연배의 남자가 다가오자 얼른 앞을 가로 막고 물었다.
  “식전 댓바람부터 웬 미친놈이.”
  남자가 황급히 멀어졌다.
  “충용장군님이 최담년 대감 댁에서 머문다는데 거기가 어디랍니까?”
  능주보다 서너 살 적어 보이는 여자가 지나가자 이때다 싶어 또 앞을 가로막고 물었다.
  “꼭두새벽부터 재수 없게시리.”
  여자가 치맛바람을 휘날리며 눈에서 멀어져 갔다. 능주는 지나는 사람마다 앞을 가로막고 물었으나 반응이 비슷했다. 하나같이 똥이나 싸고 다니는 미친놈을 대하는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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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최담년 대감 댁에서 머물고 계신 의병장님께 꼭 정해야 하는 철릭과 직령입니다요. 장군님께 드릴 약 단지도 가져왔는데 쇤네가 잘못해서 그만 깨뜨리고 말았습니다요. 바지에 묻은 건 절대 똥이 아닙니다요.”
  능주는 열세 번째 만난 남자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물었다. 도포 차림에 갓을 쓴 걸 보니, 양반이 분명했다. 신분 때문일까. 의병장이라는 말 때문일까. 아니면 능주의 진정성을 느꼈는지도 몰랐다. 양반이 고개를 점잖게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익호 장군을 말하는 겐가.”
  익호 장군이란 말에 능주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 들어보는 호칭이었다. 양반이 다시 물었다.
  “자네가 찾는 분이 혹시 김덕령 장군이신가?”
  “예, 그렇습니다요.”
  능주는 허리를 더욱 숙였다. 김덕령이란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그동안의 피로가 말끔히 가신 듯했다. 드디어 최담년 대감 댁을 찾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럼 담양에서 오는 길이겠구먼.”
  “예, 그렇습니다요.”
  “그걸 익호 장군에게 전하려고 왔단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요.”

  양반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능주를 바라보며 혀를 끌끌거렸다. 능주는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예감했다. 이미 전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순간 몸이 얼어붙었다. 양반 입에서 전사라는 말이 튀어나올 것이 두려워 장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바로 물을 수가 없었다.
  “세자께서 의병장에게 익호장군이란 칭호를 하사하셨다네. 그런데 말이야, 임금님께서 진해와 고성을 방어하라는 어명을 내리셔서 익호장군께서 나흘 전에 함양으로 떠나셨는데, 이를 어쩌나?”
  능주 입에서 낮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사력을 다해 찾아온 것이 헛걸음이었다니. 날벼락을 맞은 듯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양반 앞이 아니라면 털썩 주저앉았을 텐데, 그러지도 못하고 멍한 표정으로 서 있을 뿐이었다. 전사했다는 소식이 아니기에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능주가 안쓰러웠는지, 아니면 덕령이를 호의적으로 본 탓인지, 양반이 장군의 소식을 요약해서 들려주었다. 덕령이가 관군에 편입되었다고 했다. 함양으로 떠나기 전에 집으로 서찰을 보냈을 텐데, 아직 서찰이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라고 했다. 아마 지금쯤 서찰이 도착했을 것이라고 추측했고, 하루만 늦게 출발했어도 헛고생은 안 했을 거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리고는 자기 집으로 능주를 안내했다. 하인을 시켜 옷을 내주게 하고, 아침상도 봐달라고 했다. 빨래도 맡겼다. 이왕 일이 틀어졌으니 옷이 마를 때까지라도 푹 쉬었다가 가라고 했다. 

  양반을 따라, 양반 댁에 들어선 능주는 마당을 쓸다 양반을 맞이한 하인에게 왜군의 동태를 물었다. 돌아갈 때 참고하기 위해서였다. 아직 남원까지 왜군이 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다. 돌아갈 때는, 산길을 타지 않아도, 밤길을 걷지 않아도 될 테니까 말이다. 그 정보 하나가 이렇게 편한 길을 갈 수 있게 했다. 그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능주는 하인이 제공한 아침상을 뚝딱 해치웠다. 워낙 허기진 터라 눈치를 보시고 자시고 할 것 없이 게걸스럽게 먹어댔다. 그리고는 하인방에 들어가 왜적이 코나 귀를 베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능주 옷은 빨랫줄에 걸려 바람에 휘날렸다.

담양뉴스 webmaster@d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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