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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종의 詩이야기/ 詩의 향기,삶의 황홀(49)

기사승인 2024.03.22  14:5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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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종 칼럼위원(시인)

다 잊으니까 꽃도 핀다

복수초와 수선화가 피고 산수유와 매화꽃이 피었다. 꽃샘바람이 아무리 심술궂어도 꽃은 피고 잎새는 돋는다. 이런 꽃 피는 계절에 꽃과 님만 보면 좋으련만 또 그 아귀들의 악다구니 전쟁도 보아야 한다.

선거철인 것이다. 우리 삶에 정치는 꽃 필요하겠으나, 우리나라 정치인들을 보면 우리의 삶에 정치가 과연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회의감이 늘 든다. 그럼에도 투표장에 또 가긴 간다. 이런 때 윤제림 시인의 시를 몇 편 보는 것도 좋겠다.    

처음엔 이렇게 썼다. 

다 잊으니까 꽃도 핀다 
다 잊으니까, 강물도 저렇게 
천천히 흐른다. 

틀렸다, 이제 다시 쓴다. 

아무것도 못 잊으니까 꽃도 핀다 
아무것도 못 잊으니까, 
강물도 저렇게 
시퍼렇게 흐른다. 
-윤제림 「강가에서」 

한때 『황천반점』이라는 시집을 통해 이승과 저승길을 오가는 식객들에게 한술 밥을 차려주던 윤제림은 요새는 「청산옥」이란 이름으로 여인숙을 차려서 역시 길손들을 받는다. 그런데 거기에 오는 손님들은 누구인가?

  저 사람은 정객(政客)이다. 아니다 어깨다.
  저 사람은 협객(俠客)이다. 아니다 주먹이다.
  저 사람은 논객(論客)이다. 아니다 이빨이다./
  저 사람은 가객(歌客)이다. 아니다 아가리다.

  넌 뭐냐?

  식객(食客)이다.
  아니다. 밥벌레다.
  -윤제림, 「손님들」

그렇다. 거기에 오는 손님들 중엔 정치인, 깡패, 언론인, 가수 등도 있다. 한데 그들의 본질을 투시해보면 사실 어깨, 주먹, 이빨, 아가리에 불과한 자들이다. 왜 그런가? 가령 국회의원이랍시고 어깨에 힘이나 주고 다니다가 당 보스에게 자기 쓸개까지 갖다 바치며 공천을 받고는 4년 내내 법안 하나 발의하지 못하고 온갖 막말과 개소리만 쏟아낸다.

깡패에 불과한 자들이 협객이랍시고 의로운 자 행세하며 주먹질로 평생 남의 돈이나 뜯고 사람이나 두들겨 팬다. 정론직필을 자기 생명으로 알아야 할 언론인이라는 자들은 권력 앞에서 곡학아세의 이빨을 깐다.

무대에서 살고 무대에서 죽어야 할 가수나 배우들은 혹은 마약이나 하고 성폭력이나 저지르고 감옥에 간다. 아가리에 불과한 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순전히 사기를 치며 세상을 주름잡는 것 아닌가. 차라리 ‘나’ 같은 ‘밥벌레’는 밥이나 축내지 사기는 안 친다. 

그런 청산옥에서 “여자를 부른 일이 없는데”도 먼 길을 걸어 사랑이 오기도 하고, 그 집 앞에 “도라지꽃으로 피었다 진 적이 있었는데” 그대가 번번이 먼 길만을 돌아다녀서 사랑을 놓치기도 한다. 하기야 “그대가 옆방에 든 줄도 모르고‘ 잠만 자지 않았던가.

그  때문인지 「사랑」이란 시에선 “살 찢은 칼이 칼끝을 숙이며/정말 미안해하며 제가 낸 상처를/들여다보네.//칼에 찢긴 상처가 괜찮다며/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 칼을/내다보네.”라며 사랑의 상처를 감수하기도 한다. 

나도 그렇게 사랑의 칼에 찢기고 싶다. 그 상처가 치명적일 수도 있겠지만 청산옥 같은 이 쓸쓸한 세상에서 그래도 그중 나은 것이 사랑 아닌가!그러기에 “다 잊으니까 꽃이 핀다/다 잊으니까, 강물도 저렇게/천천히 흐른다.”라고 처음에 썼던 것은 틀린 것이다.

아니 청산옥 같은 이 쓸쓸한 세상에서 사랑을 잊는다는 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사랑을 잊는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인생을 절반도 알지 못하는 사람. 그래서 이제 다시 쓰는 것이다. “아무 것도 못 잊으니까 꽃도 핀다/아무 것도 못 잊으니까,/강물도 저렇게/ 시퍼렇게 흐른다.” 라고. 그래서 일찍이 한 시인은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벤치! 아니 아니 남해금산 앞바다의 그 금결은결 반짝이던 물결을 어찌 잊는단 말인가! 

외국영화 「정사」가 있다. 집을 나와 바텐더 생활을 하는 이혼남과 가정을 지키며 지방 소극단에서 연극을 하는 유부녀가 매주 수요일마다 만난다. 이혼남이 사는 허름한 셋방에 부리나케 달려온 그녀는 마치 굶주린 맹수처럼 사랑의 기갈을 해소한다.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하는 섹스 후 그녀는 총총히 사라지고 혼자 남은 이혼남은 고독에 몸부림친다. 서로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한 채 오로지 섹스만을 하는 만남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결국 이혼남은 유부녀의 뒤를 밟고 그녀가 그녀를 외조하는 택시운전사와 영리한 아들을 둔, 열정에 찬 연극배우 지망생임을 알게 된다. 알게 된다는 것은 사랑이 생긴다는 것 아니겠는가.

사랑은 엄청난 것이지만 그러나 그 앞에 놓인 현실이란 난관은 또 얼마나 무지막지한 것인가. 결국 그녀는 남편에게 고백을 하게 되고, 그 남편은 아내의 불륜보다는 애초에 재능도 없는 데 스타로 키우겠다는 자신의 외조를 탓하며 그녀에게 호통을 치고, 그녀는 그런 남편에게 자신의 진정한 열정을 알아주지 못한 탓이라고 원망을 한다. 그리고 이삿짐을 싸고 있는 이혼남에게 달려온 그녀에게 이혼남은 여기, 이대로 있어달라고 간절한 고백을 하지만 “안돼요”라고 그녀는 끝내 돌아선다. 

이혼남의 근원적인 고독, 유부녀의 발휘되지 못하는 열정, 이 두 가지가 크나큰 사랑으로 해소될 듯 하다가 결국 청산옥 같은 쓸쓸한 현실로 되돌아가는, 그러기에 너무도 애절하지만 너무도 속상한 결말이었다.

영화 내내 지배하는 어두운 화면, 늘 급하고 빠르고 흔들리고 마구 돌아가는 앵글, 중년의 두 주인공에 걸맞은 배우의 캐스팅 등으로 꽤 괜찮은 작품 축에 들 것 같다. 무엇보다도 사랑의 막연한 감상에 빠지지 않는 점이 맘에 든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저작권자 © 담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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