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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알기3/ 담양의 역사인물(76) 담양객사 단청 부사 윤효전(尹孝全)

기사승인 2024.05.04  17:5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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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알기3/ 담양의 역사인물(76)
담양객사 단청 부사 윤효전(尹孝全)

▲윤효전 초상

본관은 남원(南原). 초명은 윤효선(尹孝先)이고 자는 영초(詠初), 호는 기천(沂川)이다.
1612년 5월5일부터 1613년 8월 29일까지 담양부사를 역임했다. 
정유재란 후 1607년(선조40) 당시 담양부사 김니가 창건한 담양객사 동상헌을 윤효선 담양부사가 재임시 동상헌과 중대청을 단청했다.

윤효전은 1605년(선조38) 현감으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왕자사부를 거쳐 이듬해 충청도관찰사로 나갔다. 1613년(광해군5) 익사공신 2등에 책록됐으며 대사헌 재임시 임해군 옥사를 모사한 이이첨, 정인홍의 꾐에 빠져 곤혹을 치렀다.

이후 자의금부사를 지냈고 1617년에 경주부윤을 역임했다. 일찍이 호남의 군수로 재임시 도사(都事) 김시양과 함께 시험을 관장하던 중 시제가 임금의 휘(諱)에 저촉되어 탄핵을 받기도 했다.

윤효전(尹孝全)은 1563년(명종18) 출생했으며 1619년(광해군11) 사망했다. 동부승지, 이조 참의, 대사헌 등의 요직을 두루 역임한 윤휴의 아버지이다.

한편, 윤휴는 1680년 경신환국으로 남인이 실각하자 유배갔다가 사사됐으며 1689년(숙종15)에 신원되어 영의정에 추증됐다. 1659년(현종1) 1차 예송 때 남인인 허목과 함께 송시열의 예론을 반대하면서 송시열과 멀어졌고, 이후 주자의 학설을 비판하다 송시열로부터 사문난적으로 지목받았다.

2차 예송에서 남인이 승리해 숙종 즉위 후 정치 일선에 나섰으며, 여러 개혁정책들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저작권자 © 담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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