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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알기3/ 담양의 역사인물(77) 담양부사 신경진

기사승인 2024.05.27  11:4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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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알기3/ 담양의 역사인물(77) 담양부사 신경진
부사 재임시 담양부 관아(官衙) 수리 

▲신경진 신도비(서울시 유형문화재)

신경진(1575~1643)의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군수(君受), 서울 출신으로 담양부사를 지냈다.
갑진년(1604년, 선조37) 담양부사 재임시 담양부 관아를 수리하고 단장했다.

임진왜란 때 도순변사로 전쟁에 나서 전사한 아버지 신립 장군이 세운 공으로 선전관이 되었고, 오위도총부 도사로 전보되어 무과에 급제했다. 그뒤 태안군수, 담양부사, 부산첨사 등을 지냈으나 일본과의 화의에 반대하고, 왜사(倭使)의 접대를 거부하여 체임되었다. 

이어 갑산부사를 거쳐 함경남도 병마우후로 전보되자, 체찰사 이항복의 요청으로 경원부사와 벽동군수가 되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수하의 군사를 인솔하여 적의 선봉부대를 차단, 왕이 남한산성으로 피난할 여유를 주었으며, 청나라와의 화의 성립 후 다시 병조판서에 임명되었다.

그는 공을 믿고 탐오한 면도 있어 식자층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무인이면서도 김류·이귀 ·최명길 등의 문인들과도 널리 교유했는데, 특히 김류 와는 선대의 인연(김류의 아버지 김여물은 신경진의 아버지 신립의 종사관으로 충주에서 같이 전사했다)으로 절친한 사이였다.

1642년 영의정에 올랐고 이듬해 다시 영의정에 임명됐으나 곧 세상을 떠났다. 인조반정 성공 후 제일 먼저 반정 계획을 세웠다 하여 정사공신 1등 평성군에 봉해졌다. 
우암 송시열이 찬을 한 신도비가 전한다.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저작권자 © 담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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