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은 대나무의 고장으로 죽세공예는 지역의 대표적인 효자산업이자 전통을 이어온 문화유산 중 하나이고, 천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산 수입 죽제품의 범람으로 시장 경쟁력을 잃어가면서 한때 생금산업으로 호황을 누렸던 담양 죽세공예산업이 쇠락한데다 필연적으로 죽세공예 종사자들마저 거의 사라져 현재 담양에는 향토문화재 형태의 죽세공예 장인, 명인, 계승자 20명만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후계구도를 이어야 할 전수자들도 절대적으로 부족해 천년의 전통을 이어 온 담양 죽세공예의 전통과 맥이 끊길 상황에 처해 있다.
따라서, 담양 죽세공예의 맥을 이어가고 지역의 대표적 문화유산인 대나무공예의 보존과 전수를 위해 현재 남아있는 죽세공예 장인과 명인, 그리고 후계자 전수현황 및 죽세공예 강국인 중국의 대표적 대나무 고장인 의빈시의 죽세공예 현황 등을 살펴봄으로써 담양 죽세공예를 지역의 인문학자산이자 문화관광 콘텐츠로 재조명 해나가는데 보탬이 되고자 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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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싣는 순서
1. 인문학 문화유산 담양죽세공예
2. 담양의 죽세공예 장인(上)
3. 담양의 죽세공예 장인(下)
4. 중국 의빈시 죽세공예단지
5. 중국 촉남죽해, 죽세공예마을/ 종합편
(2) 담양의 죽세공예 장인(上)
담양은 예로부터 대나무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으며, 대나무를 이용한 다양한 공예품이 제작되고 있다. 담양의 대나무공예는 그 역사와 전통이 깊고, 수많은 장인들이 전통기술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대나무를 자르고, 다듬고, 엮는 등의 전통적인 공정을 통해 아름답고 정교한 죽세공예품을 제작한다. 또한, 대나무공예 명인들은 후진 양성에도 힘쓰며 대나무 공예기술을 전수하며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담양군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죽세공예 장인을 비롯, 대나무 공예명인 9명, 명인으로부터 죽세공예 기술을 전수받은 이수자는 26명, 그리고 2024년도 교육을 받고 있는 계승자 9명이 있다. 이 외에도 명인에는 지정되지 않았으나 그에 못지않은 솜씨의 죽세공예 장인이 여럿 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처우와 죽세공예기술 보전을 위한 정책은 미흡한 수준이어서 갈수록 담양 죽세공예의 맥이 끊겨질 우려를 낳고 있다. 실제로 대나무 공예명인에게는 월 70만원, 연간 840만원이 지원된다. 계승자에게는 3년차까지 연차별 월 20~30만원이 지원되고 있을 뿐이어서 담양의 전통 죽세공예 기술을 계승하거나 배우려는 후진 양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담양군 지정 대나무공예 명인은 ▲김성수(제11호) ▲노순걸(제12호) ▲서석근(제13호) ▲황인진(제17호) ▲양정자(제19호) ▲김연수(제20호) ▲박현덕(제21호) ▲장금식(제23호) ▲홍정민(제25호) 등 9명이다.
■ 대나무공예 명인(담양군 지정)
● 김성수 명인(제11호, 죽제기)
죽제기는 대나무를 엮어 만든 기제와 시제 때 쓰는 그릇으로 목제기와 그 형태가 같다.
‘목민심서’에 보면 기제와 시제 때 술잔은 세번 받치고 밥 한그릇, 면 한 그릇, 떡 두접시에 탕 세가지를 쓰되 발 달린 제기 다섯 개, 나무제기 여섯 개, 대나무 제기 여섯개를 사용했는데 김치, 젓갈 등은 나무제기에 담고 과일, 전육등은 대나무 제기에 담았다.
‘경국대전’에 보면 대나무 제기를 만드는 사람을 ‘변비장’이라 했는데 부친 김중조로부터 전수받은 김성수 기능보유자가 죽제기 제작의 명인으로 그 맥을 잇고 있다.
▲주요작품: 죽부인, 갱기바구니, 바구니, 꽃병
▲죽제기 이수자 : 심철환, 양만지, 나귀형, 황미경, 김정근
▲2024년도 교육생(계승자) : 한송화
● 노순걸 명인(제12호, 세대삿갓)
세대삿갓은 대오리를 엮어 만든 우산 같은 모양으로 얼굴을 가리거나 햇빛이나 비를 막기 위해 사용된 쓰개이다. 기원은 고려 때 승려 혜심이 편찬한 ‘선문염송’에 나오는데 당대의 승려 황벽희운의 삿갓을 쓴 화두의 일화에서 유래한다.
상을 당한 상주가 밖을 나갈 때 쓰던 방립은 대오리를 가늘게 엮어서 네 귀는 우묵하게 파이고 밖은 동그스름한 모양으로 제작했으며 관인은 흑초방립을, 서민은 백방립을 착용했고 농립, 우립, 야립 등으로 구분했다. 조부 노성룡 때부터 부친 노금동을 거쳐 지금의 노순걸 명인에 이르렀다.
▲주요작품: 세죽삿갓, 방립, 승모 방갓, 삼단찬합, 차도구
▲세대삿갓 이수자 : 장성원, 모민철, 국영숙, 김명숙
▲2024년도 교육생(계승자) : 손민정, 강민정, 김정석
● 서석근 명인(제13호, 차바구니)
차바구니는 문헌에 의하면 신라 선덕왕때부터 차가 있었고 통일신라 흥덕왕 3년에 김대렴이 당나라로부터 차 종자를 가져와 지리산에 심은 이후부터 사찰을 중심으로 점차 확대 되었다고 한다.
고려시대 학자인 이곡의 ‘동유기’에 보면 화랑들이 사용하던 차도구가 나오는데 대나무로 만든 죽합이 전통 차바구니에 속한다. 서석근 명인이 차바구니를 재현 개량해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명인의 차바구니는 전통기법에 충실하면서도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만들고 있다.
▲주요작품: 사각 차바구니, 2합 바구니, 3합 바구니, 원바구니
▲차바구니 이수자 : 임정환, 이준, 이재현
▲2024년도 교육생(계승자) : 김영자
● 황인진 명인(제17호, 죽검)
죽검은 한국의 전통 자료집에 의하면 신검으로서 황제나 임금이 국제(國祭)를 모실 때나 검무를 출 때 사용되었고 황실 세자, 세손의 권위를 상징하는 검이었으며 훌륭한 장식품이기도 했다.
국난에는 죽창과 낭선보, 창포검, 사입장도 등과 더불어 호국무예의 무기로 쓰였다. 도인들은 도를 구하는 도구로 사용, 일상생활에서는 조롱떡 깔로 쓰이거나 인삼을 자르며 기를 다스리는데에 사용됐다.
부친 황우연의 죽세공예 전통을 이은 한민족의 신검인 죽검이 황인진 명인에 의해 재현됐다. 전통 기법과 문양뿐만 아니라 죽검에 조각 등 현대적인 기법을 활용하고 있다.
▲주요작품: 본용죽검, 장식용 죽검, 선죽검도
▲죽검 이수자 : 황금빛, 최수상
▲2024년도 교육생(계승자) : 노보석
● 양정자 명인(제19호, 숯공예)
숯은 목재를 공기의 공급을 차단하고 가열하거나 공기를 소량으로 하고 가열하였을 때 생기는데 특히 대나무 숯은 미세한 구멍이 많은 숯표면이 넓어 흡수, 흡취 효과가 탁월하다.
숯공예는 숯과 꽃의 아름다운 조화를 일상생활의 장식품이자 기능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신개념 예술작품이다.
▲주요작품: 대나무숯공예, 다양한 대나무숯 부작 외
▲숯공예 이수자 : 백영숙
▲2024년도 교육생(계승자) : 조은희
● 김연수 명인(제20호, 브로치)
얇게 저민 대나무 껍질을 잘게 쪼개고 얇게 떠낸 후 여러 가지 색을 입혀 기하학적 형태로 꼬아 엮은 대나무 브로치이다.
대나무 표면을 균일한 규격으로 얇게 떠낸 다음 다양한 색으로 염색한다. 이 균일한 대나무 표면을 여러 겹으로 겹쳐 붙이고 층층이 타원형 조형으로 교차하고 꿰어가며 브로치로 만든다.
▲주요작품: 대나무브로치 외
▲브로치 이수자 : 황미경, 임어진
● 박현덕 명인(제21호, 합죽선)
부채선면을 접었다 폈다 하는 전통부채로 쥘부채 또는 접선이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고려선이라 하여 자국에선 만들 수가 없어서 더욱 귀하게 여겼다.
부채살에 종이를 붙이고 부채선면에 서화를 그려 넣어 멋을 고리에 선추를 달아 장식해 사용했다. 이런 쥘부채가 변형해 합죽선 등 다양한 전통 부채들이 생겨났다.
▲주요작품: 합죽선 외
▲합죽선 이수자 : 박현영
● 장금식 명인(제23호, 찻상)
대나무 찻상의 기원은 동아시아의 차 문화에서 비롯된다. 중국에서 차 문화가 발전하면서 차를 마시는 공간과 도구가 발달했고, 이는 한국과 일본에도 영향을 미쳤다.
대나무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원이며, 가벼우면서도 견고한 특성 때문에 다양한 생활 용품 제작에 널리 사용됐다.
또한, 대나무 찻상은 약간의 물이 흘러도 쉽게 건조되기 때문에 차를 내리는 동안의 실용성을 높다. 장금식 명인은 대나무 찻상 제작 기능보유자로 44년 경력 보유자며, 대나무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대를 얇게 켜고 잘라서 열처리 기법으로 색을 내서 만든다.
▲주요작품: 찻상, 쟁반 외
▲찻상 이수자 : 하진상
▲2024년도 교육생(계승자) : 장진수
● 홍정민 명인(제25호, 베개)
중국에서는 기원전 3세기경부터 대나무를 이용한 다양한 생활용품이 제작되었고, 대나무 베개도 그 중 하나였다.
특히, 한나라 시기(기원전 206년 - 기원후 220년)에 대나무 베개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조선시대의 기록에 따르면, 대나무 베개는 더위를 피하는 데 효과적인 도구로 여겨졌으며, 특히 한여름 밤에 시원한 잠자리를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홍정민 명인은 대나무 베게 제작 38년의 경력을 가진 기능보유자이다.
▲주요작품: 베개, 돗자리
▲베개 이수자 : 강대호
▲2024년도 교육생(계승자) : 김연지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