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옥열 칼럼위원(전남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지난 해 제76회 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는 많은 걸 생각게 한다.
영화는 2차대전 당시 수많은 유대인들의 목숨을 앗아간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붙어 있는 수용소 지휘관 루돌프 회스와 그 가족이 살아가는 모습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예쁘게 가꿔놓은 꽃이 만발한 정원에서 아이들은 뛰놀고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때론 파티도 연다.
평화롭고 행복한 모습 그 자체다. 마치 낙원이다. 회스의 부인은 이 호화로운 생활에 젖어 ‘아우슈비츠의 여왕’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정원의 바로 뒤편 담 너머에서는 하루 종일 검은 연기가 그칠 줄 모른다. 영화 내내 끔찍한 학살 장면은 단 1초도 나오지 않지만 그 검은 연기가 유대인들을 죽여 불태우는 연기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 가능하다.
그리고 그 모든 학살과정을 집행하고 책임지는 이가 바로 이 아름다운 정원이 딸린 집의 주인이자 독일군 장교인 회스다. 이런….
영화는 역사적 진실인 수용소의 지옥같은 현실 이면에서 루돌프 회스 가족의 안락하고 평화롭게 생활하는 모습을 통해, 각성 없는 인간의 인식과 행동이 얼마나 주관적이고 또 비인간적일 수 있는 지를 비판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의 무감각함과 도덕적 타락이 어디 멀리 있지 않고, 특별히 나쁜 별종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진실을 각성없이 바라본다면
영화를 보면서 내내 불편했던 부분들은 그런 지점이다. 흔히 지극히 평범하고 성실하며 착한 이들이 단지 절차적 질서를 지키거나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악한 행동을, 자신도 모르게 하게 된다는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한다.
회스도 그랬다고. 하지만 난 좀 다른 시각에서 보고 싶다. ‘무의식적 악행’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아무리 봐준다해도 인간 양심과 감성이라는 게 있는데. 넓은 시각, 깊은 지식까지 바랄 것까지는 없고 지극히 상식적인 역사 인식과 진실에 대한 태도, 그리고 선악에 대한 인간 본연의 감성만 가질 수 있어도 타인의 고통, 세상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진실에 겸허할 수 있는 게 인간이다.
서론이 긴 것은 불편하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을 추앙하고 역사인식이 배배꼬인 이들이 보이는 망언이나 퇴행적 행동들이 계속되고 많은 국민들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 명백한 역사적 진실을, 그것도 피해자이자 당사자였던 우리의 시각이 아니라 가해자요 눈만 뜨면 사실을 왜곡하고 숨기려는 일본의 입장으로 발언하고 사고하는 인간들의 행동이 너무 역겹다.
일본 스스로 불법행위를 인정하고 무효화를 선언했고, 일본에 저항한 치열한 독립운동을 이어받기로 헌법에도 수록한 사항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이상한 발언’을 일삼는 소위 ‘뉴라이트’들의 행태는 가증스럽다.
그들의 그런 언행은 마치 담장 너머에서 인간도륙의 참극이 벌어지는 데 외면하고 따뜻한 햇빛을 즐기며 희희덕거리는 행위와 뭐가 다를까? 회스는 승진을 위해, 부인은 이 달콤함을 즐기기 위해 외면했던 것 뿐인데. 나는 무엇보다 뉴라이트들의 ‘의도적 외면, 의도적 왜곡의 의도’가 참으로 궁금하다.
우리가 자초한 비극
보건대 ‘광복절을 광복절이라고 말하지 않거나’ ‘임시정부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들’ 대부분은 한 자리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지금 이러저러 고위직이나 평안한 자리에 있다. 역사적 진실을 부정하고 싶은 이들은 지금 자신의 영달을 꾀하고자 거짓을 참이라고 우기는 것일 뿐이다.
엄연한 진실을 내 출세에 유리한 쪽만 확대해석 과장인식하는 게 회스 가족들과 다를 게 없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주관적이며, 성찰하지 않는 인간군들이다.
참 안타깝지만 이런 비극의 원인은 우리가 자초한 바 크다.
역사를 청산하지 못했고, 잘못은 지옥 끝까지라도 추적해 밝히고 묻지 못했기 때문. 영화로, 학술적으로 집요하게 파헤치고, 또 법으로 제어하지 못한 그 책임이 크다. 영화의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은 수상소감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라”고. 우리를 한 번 되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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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