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담양뉴스 지역밀착형 기사/귀농일기(17)

기사승인 2020.11.03  13:33:17

공유
default_news_ad2

- 귀농인 나상찬 님의 “나는 딸기 보호자”

귀농인 나 상 찬 님

나는 귀농하기 전에 광주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했다.
요양병원 등의 병원에 침대나 가구 등을 납품하는 게 나의 주요 업무였다. 나름대로 실적은 좋은 편이었으나, 나는 귀농을 준비하고 있었다. 입사할 때부터 사장님께 준비가 되면 귀농하겠노라고 양해를 구하고 근무했다. 오전에만 하는 조건으로 일했다. 언제 귀농할지 몰라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근무했지만, 사장님은 정식적으로 급여를 주었다. 그럼에도 나는 귀농을 굳혔다.

귀농하기 전에 준비를 3~4년 했다. 농사를 본격적으로 지어 본 경험이 없으니 교육을 많이 받았다.
담양군농업기술센터 받은 기술만 해도 수 백 시간이 넘는다. 그렇게 이론적으로 농업에 접근한 뒤 부지를 알아보러 다녔다. 지금 자리 잡은 곳은 처가 인근이다. 담양에 연고가 없어 처가가 가까운 곳에 터를 잡은 것이었다. 혹시나 모를 원주민과의 불화가 염려되어 처가 쪽을 택했다. 결론은 잘 한 결정이었다. 처가 덕에 농사짓는데 크고 작은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내가 귀농하기로 하자, 아내가 흔쾌히 받아들였다. 아내는 현재 농협에 근무 중이다. 내가 직장 다닐 때 농협도 거래처 중 한 곳이었는데, 자주 접하다 정이 들었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아내는 지금도 농협에 근무 중이다. 아내는 농촌 실정을 잘 알고, 농촌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귀농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담양으로 귀농하기로 결정할 무렵, 작목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딸기로 유명한 지역이니 딸기를 재배하고 싶었다. 그런데 방법은 조금 고민했다. 토경으로 할까, 고설재배로 할까. 고민하다가 고설배재로 결심을 굳혔다. 토경 재배하는 농가에서 잠시 일을 거든 적이 있었는데 허리가 굉장히 아팠다. 한두 해도 아니고, 계속 딸기를 하려면 허리에 무리가 갈 것 같았다. 그래서 고설재배로 결정했다. 고설재배는 시설비가 더 들지만 훨씬 수월해 보였다.

다음 고민은 딸기 품종이었다. 인근 농가에서는 설향과 죽향을 많이 재배했다. 각각의 장단점이 있었다. 설향은 수확량이 많고, 재배가 용이한 반면, 죽향은 수확량이 적지만 가격이 비쌌다. 하지만 초보인 내가 재배하기에는 까다로운 품종이었다. 주위에서 초기에는 설향을 재배하면서 딸기의 특성을 파악한 다음에 죽향으로 전환하는 걸 권했다. 일리가 있는 것 같아, 설향부터 시작했다.
나는 지금 비닐하우스 두 동에 설향을 재배 중이다. 딱 두 동만 하는 것은 혼자 할 수 있는 양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아내는 농협에 계속 근무하고 있고, 돌보아야 할 애들이 있어 많이 할 수가 없었다. 아내가 퇴직하여 귀농하기 전까지는 늘릴 생각도 없다. 인건비 때문이다. 사람을 써서 많이 하는 것도 고민했지만 인건비 부담이 만만치 않아, 혼자 하기로 했다. 혼자 하기에 적당한 양이 두 동이었다. 일이 몸에 배인 농부라면 세 동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내겐 두 동이 적당한 양이었다.

▲딸기하우스

딸기 외에도 오이, 배추, 마늘 등 기타 작물도 한다. 년 소득은 오천만 원 가량 된다. 어지간한 중견 기업의 연봉과 맞먹는다. 직장에 다니면서, 특히나 영업하면서 실적이나,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서도 중견 기업의 연봉을 벌 수 있으니, 귀농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대 만족이다. 뿐만 아니라 애들도 좋아한다. 애들이 좋아하는 딸기를 마음껏 먹일 수 있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니 어찌 후회가 들겠는가.

하지만 애로 사항도 있다. 내가 가장 어려울 때는 애들이 입원했을 경우다. 애들이 아프면 주로 아동병원에 입원을 시켰다. 아내는 직장에 다니고 있으니 내가 애들을 돌보아야 했다. 농장에 작물이 없으면 마음과 몸이 가벼운데, 작물이 있으면 애들 돌보랴, 농작물 돌보랴 눈 코 뜰 새가 없다. 그럴 때가 가장 어렵다.
딸기는 한 철이다. 모종을 키우면 15개월 동안 딸기에 매달려야 한다는 말이 있다. 1년이 12개월인데 15개월을 매달려야 한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만큼 일이 많고, 신경도 많이 쓴다는 말이다. 해서 나는 모종을 사서 정식한다. 아직은 그러하다. 내가 딸기에 눈을 더 뜨고 나면 마음이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사서 쓰는 것이 마음 편하다.

딸기 하우스 옆 빈자리에 때에 따라 다양한 작물을 심는다. 깻잎을 심고, 콩도 심고, 고추도 심고, 무와 배추도 심고 다른 작물도 심어보고 싶다. 지금 빈자리에는 배추가 심어져 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배추를 보면 얼굴에 미소가 저절로 어린다. 그런 걸 보면 천상 나는 농부인가 보다. 그래도 좋다. 농부가 좋다. 노력하는 만큼 결실을 맺게 하는 땅이 좋다. 나는 오늘도 땅을 밟으며, 배추를 보고 딸기를 살핀다. 그런 삶이 좋다. 마치 딸기의 보호자가 된 것 같은 내 삶도 대 만족이다./강성오 군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1981년생 나상찬 귀농인은 2016년 담양읍으로 귀농했다
  (연락처 010-3600-7690)

담양뉴스 webmaster@dnnews.co.kr

<저작권자 © 담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