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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지역밀착형 기사/귀농일기(21)

기사승인 2020.12.30  12:5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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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농인 정현태 님의 '귀촌, 꿈같은 하루하루'

▲귀농인 정현태 님

 유년시절 가수 남진의 '님과 함께'를 흥얼거리며 꿈을 꾸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 이 노래가 유행했을 때, 가사처럼 살고 싶은 사람이 꽤나 되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도시에서 살면서도 언젠가 자연으로 돌아가리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결국 내가 꿈꾸었던 삶을 위해 담양 창평으로 둥지를 옮겼다.
 
 창평으로 오기 전에는 광주에서 요식업을 하며 살았다. 
처음에는 레스토랑을 차려놓고 양식을 팔았고, 후에는 뷔페로까지 영역을 확장하여 손님을 맞았다. 요식업의 특성상 공휴일이나 일요일이 없다. 그런 거 무시하고 문을 걸어 잠그고 며칠 쉴 수도 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기껏해야 명절 때 하루나 잠깐 쉬는 게 휴식의 전부였다. 그러니 휴가는 언감생심이었다. 손님을 맞이하려면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을 떨어야 했고 저녁 늦게까지 손을 놀려야 했다. 문을 닫을 무렵이면 몸이 무지근했다.
 마음대로 휴가를 낼 수 없고, 몸이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 때면 저절로 '님과 함께'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마음이야 하루라도 빨리 요식업을 정리하고 노래처럼 살고 싶지만 자식들 뒷바라지 때문에 마음대로 식당을 접을 수도 없었다. 2녀 1남을 두었는데 막둥이가 대학에 입학하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그제야 나는 오랫동안 품었던 꿈을 실행에 옮겼다.

▲텃밭가꾸기

 나는 귀농보다는 귀촌을 꿈꾸었다. 
그동안 마음껏 쉬지 못한 데다, 애들 뒷바라지에 대한 부담이 적어 농사지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덧 나는 농부가 되어 있었다.
나무나 채소를 가꾸는 게 좋아 집 주위에 조경수를 심고, 작은 텃밭을 만들었다. 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텃밭의 채소가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모습을 보니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그런 행복감에 나는 텃밭 범주를 벗어나 대봉을 경작했다. 묘목을 심고, 전정을 하고, 거름을 주는 모든 것이 즐거웠다. 그냥 취미로 하기보다 규모를 더 늘리고 싶어 방법을 찾았다.
농촌 출신이지만 농사 경험이 미천한 데다, 유년 시절의 농법은 현 시대와 맞지 않을 것 같아 농업기술센터를 이용했다. 기술센터에서 기초 교육이나 현장 실습교육을 받으며 식물의 속성을 배우고 익혔다. 현장 실습교육은 농업에 문외한인 나에게 특히나 큰 도움이 되었다. 게다가 귀농창업자금을 지원받아 농지도 넓혔다. 지금은 대봉과 밭작물, 수도작을 하고 있으니 농부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마을 사람들도 나를 이웃 농부로 대한다. 
의항리로 이사 온 후, 동네 분들을 만나면 먼저 달려가 인사했다. 미숙한 일손이나마 필요로 하시다면 마다않고 일손을 보탰다. 말바우장이나 담양장에 가고 싶은 어르신이 계시면 아내가 차에 태우고 모셔가곤 했다. 물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마음껏 쓰시라고 호스를 대문 밖으로 꺼내 놓았다. 마을 분들이 우리 마음을 잘 아시고 우리를 객이 아닌 주민으로 인정하신 것이다.

 나는 지금 ‘님과 함께’라는 노래 가사처럼 살고 있다. 봄에 뿌린 씨앗이나 묘목이 여름에 꽃을 피우고 가을에 풍성한 결실을 맺으니 겨울 살림이 걱정 없다. 이런 생활에 만족하는 아내가 있으니 정말로 노래가사처럼 사는 듯하다. 도시에서 느끼지 못했던 여유로운 삶이 더없이 좋다.
 아침에 눈을 뜨면 몸이 먼저 알아챈다. 늘 무지근하던 몸이 솜털처럼 가볍게 느껴진다. 콧속을 훅 파고드는 청량한 공기는 오장육부까지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드넓은 푸르름을 보고 있노라면 옥황상제도 부럽지 않다. 따스한 햇살이 파고드는 양지바른 곳에 앉아 유년시절의 추억을 환기하다보면 내 얼굴에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저 아래에서 자동차가 들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내가 운전하는 차다. 아내는 마음 분들과 어느 장에를 다녀오는 중이다. 아내 손에는 또 어떤 것이 들려 있을까. 어렸을 때 기대감을 잔뜩 안고 장에 간 어머니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나도 기대감을 안고 슬렁슬렁 대문으로 향한다. 운전하는 아내와 눈이 마주치자 나도 아내도 활짝 웃는다. 이렇게라면 한 백년은 족히 살 수 있을 듯 하다.

※ 귀농인 정현태 님은 2018년 창평면 의항리로 귀농했다.

담양뉴스 webmaster@d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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