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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기획연재Ⅴ(소설)/추월산 길라잡이(제4화)

기사승인 2021.01.18  10:2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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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성오 작가

■ 1593년 8월
(제4화)

  “사향을 갖고 가면 부모님이 풀려난다고 했잖애?”
  떡배는 임진년 4월 15일, 동래성에서 부모님과 함께 왜적에 맞서 싸웠다. 사력을 다했지만 허무하게 성이 함락되었다. 떡배 식구들은, 왜군의 총탄에 아군이 전멸하다시피 한 와중에도 살아남은 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채 숨을 고를 겨를도 없이 고행이 시작되었다. 성에 잔류한 왜군들의 노비로 전락했다.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군수물자를 수송하고, 땔감을 해야 했고, 부상병의 대소변까지 받아냈다. 어찌나 고되고 힘든 일상인지 매일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일부는 결박당한 채 일본으로 노예로 끌려가기도 했다. 이러다 식구들이 다 죽겠다 싶어 떡배가 방법을 찾았다. 대마도를 오가며 장사를 한 탓에 일본말을 할 수 있었는데, 그런 경험을 발휘했다. 왜군을 따라 들어온 일본 상인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상인을 찾아가 무릎을 꿇었다. 시키는 일은 뭐든지 할 수 있으니 제발 부모님을 풀어달라고 간청했다. 그때 우두머리가 조건을 내세웠다. 사향을 가져오면 부모님이 풀려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그랬지예. 그칸데 너무 늦게 가져왔다고 안 된다 캅디더.”
  떡배 목소리에 허탈함이 묻어났다.
  “그랬어? 그라먼 추월산으로 올 게 아니라, 근동에서 구할 걸 그랬나 벼.”
  능주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떡배를 보았다.
  “추월산으로 오고 싶어서 왔습니꺼? 그쪽은 죄다 전쟁터라, 언제 총에 맞을지 모른데 어떻게 산을 헤집고 다니겠습니꺼?”
  능주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향노루 서식지가 따로 있잖습니꺼? 지난번에 추월산에서 생향을 주웠다는 말도 참고했습니더! 봄이면 사향이 저절로 떨어진다카데예. 그래서 때를 맞춰 왔습니더!”
  “그건 그라고. 사향 두 개를 가져가면 부모님은 풀려날 수 있겄는가?”
  “그건…….”
  떡배가 대답을 얼버무렸다. 능주는 떡배 대답에서 한 번 속았는데, 그를 또 믿을 수 없다는 것으로 읽혀졌다. 어쨌든 떡배 부모가 살아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떡배가 하루라도 빨리 사향 두 개를 가져가 부모를 구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란디, 그 상인은 사향을 어디에 쓸라고 그란다든가?”
  떡배가 잠깐 대답을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일본 제5군 부대장 휘하에 주색을 밝힌 장수가 하나 있는데, 사향이라면 사족을 못쓴답니더. 사향이 취음제라 카데예? 사향 냄새를 맡으면 색기가 발동한답니더. 그래서 사향을 그 장수에게 선물로 주고, 부모님을 풀어달라고 부탁할 거라 했습니더!”
  “취음제로 쓴다고?”
  
자기도 모르게 능주의 말꼬리가 높아졌다. 난생처음 듣는 말이었다. 사향이 막힌 기를 뚫어주는데 매우 효과적이라는 말은 들었다. 골수까지 약효가 파고들어가는, 신령스러운 영약이라고 했다. 효과는 좋지만 구하기 힘들어 꽤 비싼 값에 거래된다고 알고 있었다. 사향노루는 밤에만 먹이 활동을 하고, 암벽지대에서 서식하기에 잡기가 쉽지 않고, 3년 이상자란 수컷에서만 생기므로 희소성이 있다고 했다. 약효가 넘치면 저절로 떨어지는데 그게 생향이었다. 그런 귀한 사향을 취음제로 사용한다는 말에 능주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렇답니더.”
  떡배가 확신에 찬 표정을 지었다. 
  능주는 더 이상 말문을 열지 않았다. 사향노루 이야기에 기분만 잡쳤다. 능주는 떡배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까무잡한 얼굴에 근심이 잔뜩 묻어있었다. 아직 서른도 안 된 떡배가 마흔 줄은 훌쩍 넘어 보였다. 부모님이 포로로 붙잡혀 있어 마음고생이 컸거나, 여기까지 오느라 피로가 누적되어 늙어 보이는지도 몰랐다. 부모님 안부를 챙기면 떡배가 더 가슴 아파할까 봐, 묻고 싶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능주는 떡배가 보고 들었거나 직접 겪은 왜란 이야기가 궁금했다. 
  “떡배 동상. 혹시 김덕령 장군께서 어떻코롬 지내고 계시는지 아는 것 좀 있는가?”
  
기실, 그게 가장 궁금한 정보였다. 장군 소식을 듣고는 있지만, 능주 귀에 들려오는 건 한참 전의 상황이었다. 진해와 고성을 방어하라는 임금의 명령을 받고 함양으로 입성했다는 소식은 엿새 후에 들었다. 진주에 둔전을 설치했다는 말은 보름 만에 들었다. 임금님에게 호피립과 이엄을 하사받았다는 소식은 닷새 만에 들었다. 좌의정 윤두수가 장군의 용력을 시험하려고 거제도에 진을 치고 있는 왜적 소탕령을 내렸는데, 윤두수의 계략이라고 판단하여 퇴각하고 말았다. 이에 윤두수의 미움을 받고 있다는 소식은 열흘 만에 들었다. 이처럼 소식을 듣는 것은 거리와 상관없었다. 소식이 발걸음을 따라오느냐, 말 등을 타고 오느냐에 따라 달랐고, 좋
은 일이냐, 아니냐에 따라서도 차이가 났다. 뒤늦은 소식일지라도, 궁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여기까지 온 지 열이틀 걸렸으니, 보름 전이나 될 꺼구만요. 곽재우 장군님과 작전을 펴가, 왜적을 거의 섬멸했다 캅디더.”
  “그게 정말인가?”
  능주가 들뜬 어조로 물었다.
  “그렇다 아입니꺼? 그래서 김덕령 이름 석 자만 들어도 왜군들이 쩔쩔 맨다캅디더.”
  능주는 만세를 부르며 환호하고 싶었다. 장군님이 무사하시다는 소식만으로도 기쁠 텐데, 대단한 활약상까지 들으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런 좋은 소식은 마님께 빨리 전해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꺼? 인사도 드릴 겸 빨리 가입시더!”
  떡배가 서두르는 태도였다. 능주는 왜 그 생각을 못했는지, 자신을 타박했다. 나이를 헛먹은 것 같았다.
  “오매, 아씨가 오매불망 기다리는 소식일 텐디, 얼른 가서 전해드리세.”
  
능주는 등잔불을 끄고 앞장서 석굴을 빠져나왔다. 단 일 초라도 빨리 알리고 싶었다. 능주를 따라 떡배도 석굴에서 나왔다. 
  세상이 하얗게 밝아오고 있었다. 추월산 식구들이 부산하게 아침을 맞았다. 산비둘기가 울어대고, 산새들이 흥겹게 장단을 맞추었다. 잔치라도 벌어진 것처럼 추월산이 왁자했다. 저 아래 구복마을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허공을 갈랐다. 아침을 여는 신호라도 되는 듯 연기가 집집마다 피어올랐다. 더없이 평온해 보였다. 지금 조선에 전쟁이 일어났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한가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이 시간이면 민경이도 자리에서 일어나 정화수를 떠놓고 덕령이의 무사함을 빌고 있을 것이다. 심한 고뿔에 걸려도, 집안에 대소사가 있어도, 하루라도 정화수를 빼먹은 적 없는 민경이였다. 그런 민경이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준다는 부푼 마음으로 능주는 가뿐하게 산을 내려갔다. 뒤를 떡배가 헉헉거리며 따랐다. 
 

담양뉴스 webmaster@d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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