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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알기3/담양의 인물(25)박연생

기사승인 2021.03.26  1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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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의 역사인물(25)/돈재 박연생(朴衍生, ?-1470)

돈재 박연생이 배향된 '장성 수산사'
장성 수산사 돈재 박연생 위패

돈재(遯齋) 박연생은 조선시대 초기에 태어나서 성종 1년 경인(1470)에 사망했으며 묘는 담양 월산면 월산리 가덕산에 있다. 
박연생은 지조와 정절이 세조의 왕위 찬탈시 생육신과 같은 의리를 지킨 단종의 절신으로 전해진다.  
단종 재위(1453-1455) 당시, 공이 충무시위사 대호군(忠武侍衛司 大護軍)에 있을 때 수양대군과 그를 추종하는 한명회, 권남, 정인지, 신숙주 등이 단종을 내몰고 왕위를 찬탈하려는 음모를 꾸몄다. 
공은 무관으로서 비록 수양대군을 위시한 그의 추종자들과 다정한 사이였지만 자신이 수양대군의 정권찬탈에 이용되는 것이 싫어 그들의 동참 권유를 물리치고 나아가지 않았다.

계유정난(癸酉靖難,1453) 때 태인으로 내려가 아버지를 모시고 전남 장성으로 갔다. 이후 다시 담양 월산에 있는 사위 이석손(李碩孫)의 집으로 은둔했다. 1455년에 세조가 왕위에 올라 사육신을 죽이고 1457년에 단종(노산군)에게도 사약을 내렸다. 
세조가 어명으로 공을 찾았으나 병이 들었다는 핑계를 대고 나가지 않음으로써 단종에 대한 절의를 지켰다. 1458년에 삼등공신 녹훈을 내리고 다시 좌익원종권(佐翼原從券)을 주었으나 받지않고 사위 이석손의 집에 은둔하고 끝까지 나가지 않았다.

돈재 박연생은 수양대군을 주축으로 한 신진 정치세력과 뜻이 맞지 않아 낙향하여 은둔함으로써 충의를 지켰고 본관마저 태인으로 바꾸어 명리(名利)에 뜻을 두지 않았다. 사후 장성군 황룡면 수산사(水山祠)에 배향했다. 
(출처: 월산면지 외) / 담양뉴스
 

담양뉴스 webmaster@dnnews.co.kr

<저작권자 © 담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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