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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기획연재Ⅴ(소설)/추월산 길라잡이(제13화)

기사승인 2021.06.07  09:3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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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성오 작가

■ 1594년 3월
<제13화>

  덕령이가 24살 때였다. 광주 서쪽에 상주보다 열일곱 살 많은 김세근 장사가 있었다. 서창 세하동 동하마을에서 살고 있던 세근 장사가 동쪽 장사로 알려진 덕령이를 초대했다. 덕령이는 손위 처남인 이인경, 손아래 처남 이원경과 김응회를 비롯하여 힘 꽤나 쓰는 청년 몇 명과 세근 장사를 찾아갔다. 일행에는 민경이와 아들 광옥이도 있었다. 세근 장사는 백가산에다 수련장을 만들어 장정들에게 무술을 지도하고 있었다. 수련장에서 세근 장사의 부인이 환한 얼굴로 민경이와 광옥이를 반갑게 맞았다.  
  이윽고 두 장사가 힘겨루기를 했다. 양쪽 진영의 뜨거운 응원과 함성이 주위를 진동했다. 용호상박의 대결이었다. 활쏘기, 말 달리기, 창검 대련, 들독 나르기 등을 두 장사가 종일토록 겨루었지만 승패가 갈리지 않았다. 겨루기가 끝나자 잔치가 이어졌다. 덕령이는 동이 째 들고 술을 마셨다. 한 동이를 다 비웠으니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틀거리며 돌아왔다. 
 
 “날이면 날마다, 무술 연마에, 글공부에, 술을 마시느라 잠자리 생각이 나시겄는가? 둘째를 원하시는 아씨께서 석청이라도…….”
  능주는 말끝을 흐렸다. 마늘을 꿀에 재워 먹으면 양기에 좋다고 들었다. 민경이가 그 때문에 석청을 간절히 워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둘째를 잉태하고 싶어서.
  “나리께서 몇 년째 아이가 없으신데예?”
  떡배가 물었다.
  “열여덟에 혼인해서 이듬해 아들을 낳으셨는디, 칠 년째 후손이 없당께. 그 칠 년 동안 청상과부나 진배 아니겄어? 남편이 번연히 있는디 말이여. 그러니 아씨가 속 타지 않겄어?”
  “그라겠네예.”
  떡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그만 자고, 내일 조반을 가지러 갈 때 함꾼에 가세. 도련님도 뵙고 아씨도 뵐 수 있을 것이네.”
  
 둘은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았다. 눈을 감았지만 쉬이 잠이 오지 않아 능주는 엎치락뒤치락했다. 생각할수록 덕령이가 위대해 보였다. 그런 훌륭한 덕령이의 후손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덕령이의 피를 이어받으면 틀림없이 훌륭한 장사가 탄생할 것이다. 그런 장사가 많으면 지금처럼 나라가 위험에 빠질 때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참 병란 중인데 광옥이가 아직 어리다는 게 아쉬웠다. 광옥이의 동생이 없다는 것은 더욱 안타까웠다. 민경이도 아들이 더 있었으면 하는 눈치였다. 시숙인 김덕홍이 금산성 전투에서 전사한 후로, 아들이 한 명뿐이라는 강박관념이 있는 듯했다. 아들 하나 만으로는 불안하다는 기색을 종종 보였다.
  덕령이의 후손들이 전장에서 활약하는 모습이 눈에 어른거렸다. 덕령이가 무등산 중턱, 주검동에서 만든 무기를 높이 들고 맨 앞에 서서 군사를 호령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광옥이가 오십 근짜리 철병도를 휘저으며 적군을 무참히 도륙하고, 동생은 이백 근짜리 쌍철추를 휘두르며 적군 사이를 종횡무진했다. 동생이 말에서 활을 쏘는 족족 적군이 픽픽 쓰러졌다. 아군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고 함성은 천지를 뒤흔들었다. 놀란 적군이 급히 퇴각하지만 아군들의 거침없는 추격에 추풍낙엽처럼 적군들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능주는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금까지 석청을 따러 다녔고,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지만 썩 많은 양을 따지 못했다. 1년에 한 번이 고작이었다. 두 돼 들이 단지 하나를 채우기 힘들었다. 벌이 고지대 암벽에 꿀을 모으기 때문에 발견하기도 쉽지 않고, 발견해도 따기 어려웠다. 너무 위험한 곳에 있는 곳은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를 대동하고서라도, 기필코 따다 드리고 싶은 마음이 불끈 치솟았다. 능주는 그 위치를 머리에 떠올렸다. 위험하기 그지없는 암벽 중간지대였다. 그곳을 오르는 상상을 하며 잠을 청했다. 풀벌레 우는 소리, 올빼미 우는 소리가 청아하게 들렸다. 밤늦게까지 뒤척여도 피곤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침을 알리는 산새 울음이 낭자했다. 산새 소리 사이사이에 산비둘기가 구구, 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자정이 지나 잠자리에 든 능주는 눈을 번쩍 떴다. 떡배도 늦게까지 뒤척이다 잠들었는지 모로 누워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다. 능주가 떡배 어깨를 살짝 흔들자, 떡배가 벌떡 일어났다. 늦게 일어나서 면구하다는 표정이었다. 능주는 늦은 게 아니라고 떡배를 안심시켰다. 아래 여막에 귀를 기울여보니,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능주와 떡배는 부산스럽지 않게 울짱 밖으로 빠져 나갔다. 상주 집으로 가서 조반인 죽을 가져올 참이었다.
  울짱에서 3리쯤 지나가다 말을 타고 오는 담양 부사와 마주쳤다. 담양 부사는 어제와 다르게 작은 보따리를 안장에 걸고서 다가오고 있었다. 이른 시간에 웬일이지 하는 표정으로 능주는 얼른 길 한쪽으로 비켜서서 고개를 숙였다. 담양 부사가 혼자 오는 것도 처음이고, 식전 댓바람에 오는 것도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담양 부사는 미시가 넘어야 장성 현감이나 다른 나리와 여막을 찾곤 했다. 떡배도 능주를 따라 길 한쪽으로 비켜서서 고개를 숙였다. 담양 부사는 말을 세우고 능주에게 나리가 기침하셨는지 물었다. 아직이라고, 하자 담양 부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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