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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알기3/ 담양의 역사인물(59) 조선초 충신 문익공 김여지(金汝知)

기사승인 2023.03.13  11: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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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현사 유버비

김여지(1370~1425)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자행(子行). 아버지는 고려 밀직제학을 지낸 김도(金濤)이다. 성품이 충직하고 도량이 넓었으며 조선초 태종·세종시기 문신이다.

사후에 문익(文翼)공 시호를 받았으며 담양 수북면 나산리 삼현사(三賢祠)에 배향됐다.

고려 밀직제학 김도의 둘째아들 김여지는 고려 1389년(창왕1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했으며 조선 개국후 1408년 판내섬시사, 우대언·좌대언을 거쳐 1410년 지신사를 지냈다.

1413년 지신사로 있을 때 고려 종실의 후손인 왕거을오미(王巨乙吾未)의 동정을 알고도 보고하지 않은 죄로 파면됐으나 이듬해 예문관제학으로 복직, 남재(南在) 등과 문과 회시(文科會試)를 주관하고 충정도관찰사로 파견됐

다. 이후 1416년 대사헌이 되었고, 양녕대군이 세자에서 폐위되기까지 세자좌빈객을 겸임했다. 1417년 어머니 간병을 위해 사직했으나 허락을 받지 못하고 예문관제학이 되었으며 이어 공조판서·예조판서·판한성부사 등을 역임했다.

1418년(세종 즉위년)에는 형조판서로 하정사(賀正使)의 임무를 띠고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병으로 일시 사직, 1422년 예조판서로 복직됐다. 이듬해 의정부참찬으로 발탁되었으나 병으로 다시 사직했다. 

한편, 삼현사(三賢祠)는 담양 수북면 나산(羅山)에 세거(世居)한 연안김씨(延安金氏)와 관련이 있다. 나산은 연안김씨 13세 처사 인개공이 임진왜란 직후 처음 거처를 잡은 후 그 후손들이 직강공파 나산종중(直講公派羅山宗中)을 이루어 세거해 온 마을이다. 고려 밀직제학 나복산인(蘿~山人) 김도(金濤.∼1378)와 두 아들 문정공 김자지(金自知), 문익공 김여지(金汝知)의 학덕과 절의를 추모하여 창평유림과 호남일대의 유림들이 위패를 모시고 춘추로 제사를 올리며 아울러 후학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던 곳으로 1827년에 건립했다./ 담양뉴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저작권자 © 담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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