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담양뉴스 창간4주년 기획연재Ⅲ(소설)/소쇄원의 피로인(제17화)

기사승인 2020.11.20  15:27:39

공유
default_news_ad2

- 양진영 작가

<제17화>

그 시각에 종일 뛰어다닌 탓에 허기에 지친 몽린은 무등산 자락을 덮기 시작한 노을에 취해 있었다. 창평 들녘을 부챗살로 덮은 저녁 노을이 맞은편 산봉우리를 불그스름하게 물들였다. 몽린은 오후 내내 한 가지 사념뿐이었다. 
어머니와 몽인이, 혜란이를 두고 홀로 도망쳐야 하는가…… 아버님이 살아계셨으면 뭐라고 하셨을까 …….
곁에서는 함께 도피한 창암촌 식구들이 굶주린 배를 채우기에 바빴다. 소나무 껍질, 설익은 알밤, 가을 산딸기 등등 닥치는 대로 먹어야 했다. 설사를 하든 구토를 하든 엉겁결에 들고 나온 쉰 보리밥까지 나누어 먹고 있었다.

“그것은 왜노들 속임수랑께. 산을 내려가시면 다 죽제!”
무당 할멈으로부터 야스하루의 겁박을 전해 들은 어느 아낙은 당차게 반대했다. 왜인이 처세 경전으로 삼는 손자병법은 적을 속이는 방법들로 가득해 그들은 남을 홀리는 데 능했다. 막상 은개가 내려가도 마을 사람을 모두 도륙 낼지 몰랐다. 한데 몇몇 남정네는 은근히 말을 흐렸다. 
“어째 그렇게만 생각하는가. 수십 명 목숨이 은개에게 달려 있는디.”
창평 향교에 다닌다는 유생이 슬슬 꼬드긴 탓에 분위기가 은개를 내려보내는 쪽으로 흘러갔다. 고아에게 밥을 먹여 준 것도 다행인지라 은개는 가타부타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형틀에 묶인 동리 사람들이 정각반각(세 시간)쯤 지나면 죽게 된다는데…… 어머니도 거기 있을지 모르고.

더 늦으면 안 되겠다 싶은 몽린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숙부님. 저도 내려가렵니다. 어머니와 두 동생을 두고 저 혼자서 도망치면…… 돌아가신 아버님이 용서치 않을 것입니다.”  
“허어, 지금 죽은 형님 처지를 살필 때이더냐. 니가 살아 있어야 난이 끝난 뒤에 네 가족을 돌볼 수 있어! 창평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그 나름대로 살 길이 있을 것이야.”
양천운은 자신은 도피하려는 처지인데 어린 조카가 막무가내로 내려가려고 하자 역정이 난 듯했다. 몽린은 물러서지 않고 말했다. 
“지금 저 아래 계신 작은할아버님은 제가 학구당에 들를 때마다 오상(인의예지신)을 목숨보다 소중히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사람 사이에는 재물보다 인정이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저와 한솥밥을 먹고 자란 은개를 어찌 홀로 보내겠습니까.”
몽린은 가슴에서 어떤 감정이 치밀어올라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읍소했다. 
“저는 결심했습니다. 꼭 가야겠습니다. 어머니, 혜란이, 몽인이가 저 아래에 있는데…… 저 혼자 도망쳐 살아남으면…… 평생 후레자식 소리를 들을 터인데…… 흐흑.”

조카의 말이 이치상으로는 백 번 맞았다. 함께 가지 못하는 양천운은 민망스러운지 싸리나무 가지로 훨훨 부채질했다. 은개의 젖은 눈망울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어린 소녀 혼자서 사지로 가면 얼마나 가슴이 아릴까. 가족을 위해 내려간다고 말은 했지만 어쨌든, 은개는 악종들 소굴로 함께 갈 동무가 있어 든든하리라.
이유야 어찌 됐건 몽린의 이때 결단이 후일 온 식구가 변란을 피해 편히 지내는 단초가 됐다. 작은할아버지, 양자정이 늘 가르쳤던, 사람은 인정이 있어야 돌아오는 것이 많다던 말의 뜻을 몽린은 평생을 두고 체험했을 터.

“은개야. 훌훌 잊고 내려가자꾸나.”

몽린은 누군가 쥐어준 두건으로 머리를 감싸며 은개를 재촉했다. 기실 자신을 더 재촉하는 말이었다. 마음이 바뀔까 두려워서.
왜놈들 아가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 송장이 된다 한들 어머니를 두고 갈 수는 없는 법!
생소한 사멸이 두려웠지만 적들이 원하는 것이 은개의 목숨뿐이었으므로 그녀를 데리고 내려가야 했다. 몽린은 아직 어려서 체험하지 못했겠지만 죽음은 늘 모르는 곳으로부터 왔고 거스르는 자만 살아남았다.
저 멀리서 창평현을 빼곡히 메운 창검의 기치가 넘실거렸다. 몽린은 휘적휘적 걸어 내려가며 노래하듯 말했다.
“은개야, 앞만 보고 가자. 정든 사람들이 목놓아 기다리는 곳으로.”
암수 까치가 하늘에서 뒤엉켜 날면서 보란 듯 금실을 뽐냈다.

담양뉴스 webmaster@dnnews.co.kr

<저작권자 © 담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