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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창간4주년 기획연재Ⅲ(소설)/소쇄원의 피로인(제20화)

기사승인 2021.01.25  10: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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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진영 작가

<20화>
■ 안골포의 눈물비

임진왜란에 뛰어든 왜군1군단, 만 팔천 명은 거개가 천주교도였다. 그들은 스스로를 성스런 기리시탄吉利支丹 군대라고 으스댔다. 코니시 부대 칠천 명은 예수 천당, 하고 외치며 조선군 심장을 찔렀다. 소宗 부대 오천 명은 성모상 나무 쪼가리를 입에 물고 마을을 불태웠다. 아리마 부대 이천 명은 칼 손잡이에 십자고상을 새기고 어린애 목을 베었다. 마츠우라 부대 삼천 명은 묵주를 목에 걸고 아녀자를 겁탈했다.
그들에게 천주교를 가르친 세스페데스 신부는 임란 때도 웅천에 장기 거주했고 정유년에도 두어 달 머물다 일본에 돌아갔다. 지금 웅천에는 왜인이 파드레라고 부르는 또 다른 신부가 남아서 조선인에게 포교하고 있었다. 기리시탄이 되면 먹고 자는 곳이 좀 더 편안하고 코니시 부대 왜인들이 같은 기리시탄이라고 돌보아 주고 있어서 야스하루 진영에서도 이백 명이 넘는 포로들이 예배당에 다니고 있었다.  

“자, 자. 오늘 밤은 그런 걱정일랑 잊고 굿이나 보세. 모처럼 망개 만신이 진혼을 한다네. 어여들 가세나.”
춘동이가 주섬주섬 미투리를 챙겼다. 가까이서 깽깽 꽹과리, 삘리리삘리리 풀피리, 둥둥 장구 치는 굉음이 울렸다. 굿판에서 제짝을 만나려는 사내들 눈동자가 대보름 달집같이 붉었다. 먼저 끌려온 포로 중에는 한 해 째 남녀가 따로따로 막사를 쓰는 사람도 있었다. 몽린도 이제 밤마다 끙끙 용두질하는 소리가 자장가 듣듯 익숙했다.
“정씨 조상님네, 좌정하옵소서. 한도 많고 원도 많은 덕남이가 극락천도하길 도우시사…….”
망자의 넋을 위로하는 오구굿이 한창이었다. 무녀가 죽은 아이가 입었던 푸르스름한 잠방이를 빙글빙글 돌렸다. 그 앞에서 혼령을 부른다는 넋전이 갯바람에 날려 하늘거렸다. 향나무가 타면서 내는 연기가 사람 모양으로 오린 종이를 휘감고 돌았다. 송장이 뒤채이는 듯하여 곁에서 보던 몽인이는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덕남이 원혼이 저승길로 못 간 것이여.”

새벽녘에 갯가에서 아이 울음을 들었다는 사람이 벌써 대여섯이었다. 오싹해진 아낙네들이 별의별 뜬소문을 퍼뜨렸다. 그러자 무당인 망개가 굿을 해주겠다고 자청했다. 피로인들로 북적대는 수용소였지만 왜군은 굿판은 허락해 주었다. 그들은 기리시탄이나 불교를 믿었지만 겉으로만 믿는 것이고 실제로는 자신들의 토속 신을 더 믿었다. 일본에는 큰 신만 해도8백 가지라고 했다. 조선의 무당이 신기했던지 굿을 해도 가만히 두었다.
덕남이 아비는 산척들과 어울려 약초를 캐거나 산짐승을 사냥해 먹고 살았다. 산쟁이라 불리는 그들은 들개를 맨손으로 때려잡고 세 명이 모이면 불곰과 능히 대섰다.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해서 수백여 명이 고령에서 의병을 일으킨 김면과 더불어 임진왜란에서 큰 공을 세웠다. 겨울에 사냥감이 없었던 덕남이 아비는 망개 할멈을 따라 곧잘 굿판에서 장구를 쳤다. 다른 만신들은 화랭이라 불리는 남정네 고수를 데리고 다니는데 망개는 홀로 뛰는 것을 그는 애처로워 했다. 망개가 탯줄을 잘랐다는 덕남이는 읍내 아낙네들이 천하다고 멀리하는 무녀를 친할머니같이 따랐다. 덕남이와 망개는 피를 나누지 않았지만 가족 같은 사이라고 했다. 

“천하부정, 지하부정…… 옥왕천존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덕남이 아버지가 치는 요고 가락에 어울려 망개가 뜀뛰듯 솟구쳤다. 왼손에서 넙적하고 날이 시푸르뎅뎅한 신칼이 나부끼고 오른손에서는 대가리가 붉은 삼지창이 괴기를 뿜었다. 
“훠이, 물렀거라. 빌어먹은 걸립귀신, 도적질한 말명잡귀, 목 매단 영산잡신 모두, 모두 물러서라.”
무녀의 버선코가 땅을 박차면 서슬 푸른 창이 따르듯 하늘을 찔렀다. 악한 귀신을 쫓고 선한 신령을 맞이하는 무(巫)의 몸짓이었다. 
흥! 그까짓 예수 귀신이 이기나 우리 일월성신님이 해내나 보자.
망개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가 모시는 신령은 해와 달과 별을 맘대로 부렸다. 천지조화를 일으키고 비와 바람을 부리는 신불이었다. 그래서 가뭄이 심한 해에는 인근 마을에서 으레 그녀를 불렀고 별신굿을 지낸 뒤에 용케 비가 내린 적도 한두 차례 있었다. 병자를 치료하거나 객귀를 물리치는 푸닥거리는 수백 번도 더했다. 그럭저럭 쉰 살이 넘었을 때쯤에는 인근에서 제법 용하다고 알려져 복채로 밭떼기께나 장만했었다.  
한데 그 천주라는 남만신이 감히 내 몸주를 욕보이다니.
망개가 맨발로 작두 위에 훌쩍 올라섰다. 이빨로 놋동이를 물고 시퍼렇게 벼린 날 위에서 덩실덩실 춤추는 모습에 구경꾼들이 얼어붙었다. 그 칼날은 어젯밤에 왜인들이 정각이 넘도록 갈은 것이다. 무명 천은 갖다 대기만 해도 스르르 잘렸다. 놋쇠 그릇도 젊은 장정 두세 명이 낑낑대고 옮긴 것이다. 그런데 머리가 희뿌옇게 센 노파가 작두 날에서 미친 년 널뛰기하듯 하니 지켜보던 왜병들도 얼이 반쯤 빠졌다.
망개가 지난해에 코니시 진영에 잡혀와서 보니 꽤 센 신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천주님이라고 불렀고 외아들이 예수라고 했다. 얼마나 무서운 사귀인지 아귀 떼들이라는 왜놈들까지 십자 모양 쇳조각에 대고 넙죽넙죽 절했다. 적들은 아침에는,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을 믿나이다, 하고 기도하고 나가서 저녁께에는 피가 줄줄 흐르는 백성들 머리통을 서너 개씩 메고 들어왔다. 그것을 소금에 절여 큼지막한 나무 상자에 차곡차곡 쌓아서 일본에 보내곤 했다. 
“흥, 오죽하면 저렇게 막돼먹은 천종들한테 씌웠겠느냐. 그까짓 잡귀신쯤이야…….”

담양뉴스 webmaster@d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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