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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창간4주년 기획연재Ⅲ(소설)/소쇄원의 피로인(제22화)

기사승인 2021.02.26  09:3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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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진영 작가

(제22화)
■ 안골포의 눈물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몽인이 거주하는 막사를 감시하는 왜병이 도소주에 취해 웅얼거렸다. 그의 목에서 묵주가 능청능청했다. 큰 구슬 다섯 개, 작은 구슬 쉰 네 개를 줄에 뀄다. 끝에는 누르스름한 십자가가 달렸다. 그 성물은 조선인들 손가락뼈를 갈은 것이다. 때로는 십자가를 만들려고 멀끔한 손목을 잘랐다. 천주 성부의 자애로우신 딸 마리아! 스무 명 남짓 왜병들이 모여 앉아 큰 소리로 기도했다. 그들의 오른손에서 묵주 팔찌가 돌아갔다. 구슬 열 개를 세며 환희의 신비를 찬송했다. 이어서 빛, 고통, 영광의 신비가 잇따랐다. 그들 옆에서 올가미에 옥죄인 열 사람이 캑캑댔다. 곡식 열 홉을 숨겼다는 이유로 그만큼의 조선인이 죽어야 했다.   한 왜병이 노인 머리를 그러안고 당겼다. 바위에 묶은 칡 줄이 팽팽해지면 목을 옥죄인 늙은이가 숨을 컥컥거렸다. 그 곁에서는 장정이 후박나무 가지에 매달려 대롱대롱했다. 허리를 가는 쇠사슬이 친친 감아서 버둥댈수록 뾰쪽한 쇠침이 살을 파고 들었다. 잘록해진 허구리에서 이따금 걸쭉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저들은 며칠째 저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며 누구를 탓했을까? 몽린은 신부가 선사한, 하마 가죽으로 만든 로사리오를 만지작거렸다. 그것을 목에 건 왜병이 자신이 섬기는 신의 계명을 어기고 왜 마구 살인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궁금해진 몽린은 포교를 하려 막사를 찾아온 미구엘에게 물어보았다. 그가 흐흐, 웃으며 답했다.
“살인을 하는 것은 왜인 불자들도 마찬가지였단다. 악인이야말로 아미타불에게 구원받는다고 떠들며 마음껏 죄를 저질렀지.”

스스로를 남만인 이름으로 부르는 미구엘은 갑오년(1594년)까지는 고성 운흥사에 머물던 승려였다. 전쟁이 소강 상태였을 때 일본에서 보물로 소문난 고려대장경을 탐낸 나베시마 부대가 사찰을 에워쌌다. 그 책자 속에는 성스런 사성제가 쓰여 있다. 물욕을 버려야 안존하다는 진리이다. 한데 왜인들에게 불교는 장의사였을 뿐.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그런 적에게 맞섰던 승려들은 죄다 도륙이 났다. 절에서 한 마장쯤 떨어진 낙서암에서 안거 수행 중이던 몇 명만 살아서 끌려왔다. 미구엘도 그중 하나였다. 
“그때 신부님이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죽었을 것이야.” 미구엘은 몽린의 어깨를 톡톡 어루만지며 몇 년 전의 악몽을 회상했다. 나베시마군이 머물던 죽도에서는 신란이 퍼트린 불법이 망령처럼 떠돌았다. 그 일본 승려를 본 자는 드문데 공히 부처의 현신으로 여겼다. 그가 악업을 쌓을수록 극락왕생한다고 말했단다. 그래서 수시로 수숫단 속에 조선인을 넣고 불로 태웠다. 왜병들은 쉬이 안 타는 오동나무 각목에 사람을 묶고 머리에 대나무 삿갓을 씌웠다. 기둥, 새끼줄, 갓에는 여물을 넣은 진흙을 발라 불기운을 막았다. 아래부터 차곡차곡 장작을 쌓고 억새와 수수로 덮었다. 한 사람 당 장작 이백, 수수 오백 다발이었다. 하루 내내 그을리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미구엘은 그들 곁에서 목탁을 두드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 불은 활활 타오르지 않았다. 변덕스런 강바람 탓에 화염만 날름댔다. 그때마다 조선인들은 혼절과 소생을 되풀이했다. 남정네는 허방에 빠진 불곰같이 으르릉거렸다. 아낙네가 외마디로 우짖는 울음이 십 리를 넘어 울렸다.

“남묘호렌게쿄…… 남묘호렌게쿄…….” 허구한날 왜병들이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법화경만을 따르렵니다! 염불했다. 도깨비탈을 쓰고 ‘나무묘법연화경’이라 적힌 깃발을 흔들며 미친 듯 구호를 외쳤다. 그들이 믿는 관세음보살은 까막눈까지 골고루 보살핀다고 했다. 그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곧 달려와 통분을 삭혀준다고 했다. 그 부처는 조선인들의 아우성은 못 들은 척했다. 수십 마디 왜어 염불을 못 외운 무지렁이들은 시커먼 숫덩이가 됐다. 
 왜군2군단 이만 이천 명의 구 할은 불자들이었다. 그들이 모시는 부처들은 자비의 신이었다. 가토부대 만 명은 일련종을 따랐다. 법화경을 믿지 않는 자는 전부 악인이다, 라고 외치며 목을 잘랐다. 창에 찔린 아랫것들은 왜 죽어야 하는지 영문도 몰랐다. 나베시마 부대 일만 이천 명에는 정토종 신자가 많았다. ‘나무아미타불’이라 쓴 깃발을 매단 창으로 아녀자의 젖꽃판을 후렸다. ‘나아가면 극락, 물러서면 지옥’이라는 주술에 걸려 사멸을 가벼이 여겼다.  운이 좋게도 미구엘은 나베시마군이 코니시 부대에게 넘겨주는 포로에 포함됐다. 미구엘이 코니시군의 군선을 타고 김해 죽도성을 떠나던 날 먼동이 성곽을 희붐히 감쌌다. 고니, 청둥오리, 도요새, 가마우지 떼거리가 낙동강 어귀를 어지럽게 수놓았다. 그때 그는 매양 품에 안고 다니던 목불상을 불태웠다. 거기서 영험이 보이면 다시 승려로 돌아갈 작정이었다. 하나 애타게 기다려도 금색으로 칠한 나무에서 사리가 한 과도 나오지 않았다. 미구엘은 사분거리는 투로 몽린에게 말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단다, 그 목불상이 부처님 분신이 아니라는 것을 !”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저작권자 © 담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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