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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농사에 달본산 둘레길이 있는 봉산면 ‘신학마을’

기사승인 2021.03.26  10: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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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뚤레뚤레 동네한바퀴(29)

노인회장님, 이장님

 2주 전 방축리에서 만난 ‘농촌유학’ 온 학부모를 만나 이야기 나누고 보니, 요즘 학교 교육에 있어서 도시와 농촌이 상생하는 ‘농촌유학’ 만한 대안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싶었다. 
신학(新鶴)리는 고려시대에 생성된 마을로 현재 70호 110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마을로 들어가자 골목골목 그려져 있는 벽화 감상의 재미도 있고 깨끗하고 넓어 보였다. 
마을을 둘러보는 길에 만난 이 마을 진환연 개발위원장님께 “마을에 벽화가 그려져 있어서 무엇이 좋은가요?” 묻자 “허물어져 가는 담장 때문에 아이들이 다칠 것 같아 시작했던 사업이죠. 골목이 환해져서 주민들 마음도 더 밝아졌고, 또 주민들이 마을을 더 깨끗이 하려고 노력하는 점이 좋아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마을 중앙에는 학교가 있는데 예전에는 1,000명 이상이 다녔던 봉산초등학교다. 지금은 64명이 재학 중이다. 
“이 마을의 주된 농산물은 무엇인가요?” 
“하우스 수박농사를 지어서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았죠. 물론 지금도 수박농사를 짓고 있고요.”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1월 말에 모종을 식재해서 5월 초에 수확 시작하죠. 벌써 덩굴이 뻗어서 작은 꽃망울이 맺히기 시작했네요.” 
“올겨울 추위에 난방비 많이 들었죠?” 
“연료로 난방하면 남는 것이 없어요. 그래서 비닐로 4겹 덮어서 난방했죠.” 
이 말에 얼마나 애써서 수박을 기르고 계시는지 상상이 되었다.(김귀현 노인회장님의 800여 평 수박 재배 하우스를 둘러보았다)
“노인회장님, 마을 자랑 좀 해주세요” 
“마을 주민들이 순한 편이예요. 2년 전 만들기 시작한 ‘달본산(달을 본다는 의미) 둘레길’이 걸어볼 만해요. 한 번 걸어볼까요?” 
“네 저는 걷기 좋아해요.”라고 답하고 둘레길로 들어섰다. 
우리 뒤로 89세·94세이신 마을 어르신 두 분이 오고 계셨다.

달본산 둘레길에서 바라본 마을풍경
달본산 이정표

둘레길 초입에는 정자와 주변에 꽃씨를 뿌린 꽃밭이 보이고, 이어서 바로 신이대 숲길이 나왔다. 이어서 리기다소나무 숲길 다음에는 맹종죽 숲길이 번갈아 가면서 2.5km의 둘레길이 이어졌다. 신이대·리기다·분죽이 끊임없이 숲길을 둘러싸고 있고 정갈하게 정리가 되어있어 여름용 가벼운 운동화에 긴 치마를 입은 채로 산책을 했는데도 하나도 불편하거나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계속 ‘아름답다’, ‘공기 좋다.’ ‘기분 좋다.’만 연발하는 사이 둘레길이 끝이 나버려 정말 아쉬웠다. 서울의 딸이 집에 오면 남편과 같이 꼭 한번 오고 지인들에게도 소개하리라 다짐한다.

둘레길을 내려와 좀더 앞으로 가니 노거수가 보였다. 300년이 넘은 그 아름드리나무 밑에는  오래된 모정이 있었다. 60년이 넘은 고색의 나무 기둥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진지섭 이장님을 만나 마을일을 여쭤 보았다.
“이장님, 앞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요?” 
“골목길에 자동차가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넓히고 싶고요. 이주민이 많이 들어와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장님과 헤어지고 미리 연락을 드렸던 봉산초등학교 임금순 교장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방축마을에서 ‘농촌유학’으로 온 학부모 얘기를 듣고 나서 이 학교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강진 두메산골 옹천초등학교에서 ‘농촌유학’ 운영을 잘하셔서 10명 재학생으로 폐교위기에 있었던 학교를 재적 40명의 학교로 만든 분이었다. 이렇게 성공하기까지는 벤치마킹을 하기 위해 ‘농촌 유학’으로 앞서가던 전북과 일본을 다녀오고, 인천과 경기에 있는 지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하는 등 쉽지 않은 여정이 있었다.

봉산초등학교 임금순 교장선생님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좋은 기억과 어려웠던 기억으로요.” 
“강진에서 5학년 친구가 혼자 재학 중일 때 창원에서 같은 학년 학생이 와서 친구가 생기자 그 아이가 ‘나에게도 친구가 생겼다. 5년 만이다.’라고 했을 때 가슴이 찡해서 가장 기억에 남아요. 인천에서 두 자매가 와서 노부부 댁에 머물렀는데 그 노부부가 ‘평소에는 부부간에 투덜거리기도 하고 음식도 대충 먹었는데 아이들이 오고부터는 아침부터 제대로 된 음식을 준비해 먹어서 부부건강도 좋아졌다.’라고 해서 기분이 좋았고요. 한 번은 한밤중에 ‘더 이상 아이들을 돌보기 힘들 것 같다.’라고 하소연하는 전화가 와서 깜짝 놀랐던 적도 있었어요. 그 후 센터를 만들었죠. 특히 야간에 마을 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 이주민 학부모들의 협조는 감동적이었어요. 노곤한 하루 일과 후에도 꼬박꼬박  영어·중국어·일본어·세계요리 교실 프로그램에 임해 주셨어요. 그러다 보니 꾸준히 마을 학교가 운영되었고, 학예회 때는 군수 면장을 비롯하여 지역민들이 150여 명이나 와주셨죠.”

다시 “요즘 관심사는요?”라고 묻자 
“제가 농촌 유학프로그램을 진행했던 내용을 모두 일기 형식으로 기록해두었어요. 이 내용으로 책을 출판해서 후배 교사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답하셨다.
“1년 반 뒤 퇴임하고 무슨 일을 하고 싶으세요?” 
“농촌도 살고 도시도 살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을 안정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활동가를 양성해서 현장에 보내주고 싶어요. 이 프로그램에서 우리보다 30년 정도 앞선 일본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거든요.”
“희망 사항이 있다면요?” 
“세 가지가 있어요. 첫째, 유학생이 머무르는 농가의 냉난방 시설개선 보조사업. 둘째, 가족형 ‘농촌 유학’의 경우 나중에 부모님들이 정착을 희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 부모님들이 할 수 있는 일거리를 마련해주는 것. 셋째, 폐교를 리모델링 해서 젊은 가족들이 주거비 걱정 크게 하지 않고 정착을 할 수 있도록 하면 인구 유입에도 도움이 되죠. 실재로 부산에서 오신 학부모는 지역에 빵집을 열어 잘살고 있어요.” 

 교장 선생님의 희망 사항은 모두 ‘농촌유학’에 대한 것이다. 
역시 ‘농촌유학’의 선구자이며 전문가답다. 나도 할 수 있다면 ‘농촌유학’ 프로그램에 힘을 보태고 싶다./ 양홍숙 군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모정 앞 320년 넘은 노거수
방앗간
연료를 사용하지않는 수박하우스
유학생이 6명 함께하는 봉산초등학교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저작권자 © 담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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