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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지역밀착형 기사/귀농일기(27)

기사승인 2021.04.05  10:4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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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농인 오필선 님의 '대추토마토 반려자'

귀농인 오필선 님

하우스에 들어가면 여기저기서 반겨주는 빨간 미소들. 탐스럽게 둥근 녀석들 때문에 어떤 명승지를 구경하는 것보다 흐뭇한 기운이 가슴 가득 출렁인다. 마치 오래 교류한 지인을 모처럼 만난 것처럼 반가운 표정으로 녀석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잘 잤어? 내가 보낸 인사에 반응이라도 하듯 녀석들은 싱그러움을 연신 퉁겨낸다. 녀석들은 바로 또 다른 나의 자아, 대추토마토다. 녀석들을 보면 얼굴 가득 연지곤지를 바른 생기발랄한 새색시가 떠오른다.
  
 내가 녀석들하고 인생 2막을 함께하게 된 건 우연이었다. 나는 관산에서 태어나 초등학생 때 서울로 이사했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직장 생활을 하고, 결혼하고, 애들까지 낳았으니 서울에서 평생을 산 것이나 진배없다. 서울에서 터전을 일구고 가족을 이루었지만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고향이 자리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리라고 결심 아닌 결심을 하고 서울 살이를 했다. 아내에게도 자주 그런 마음을 내비쳤다. 아니 결혼 전에도 조건을 달았다. 퇴직하면 고향으로 내려가자고. 아내도 시골을 동경한 탓에 흔쾌히 동의했다. 퇴직을 60으로 계산하고 그 후로 내려갈 예정이었는데 몇 가지가 뒤틀렸다.
  
 나는 IT업계에서 근무했다. 회사에서 꽤 실력자로 인정을 받았다. 정년까지는 무난할 것이었다. 하지만 하루라도 빨리 귀향하고 싶어 회사를 접었다. 그리고 고향으로 가려고 준비를 서둘렀는데 지인이 말렸다. 두 가지 이유를 들이밀었다. 고향으로 가서 성공적으로 귀농하면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실패를 하면 좋은 평이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고향은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면 가고 싶을 때 언제라도 갈 수 있지 않겠냐고 했다. 담양으로 와서 딸기를 재배하면 괜찮을 거라고도 했다. 일리 있는 말이라 지인 말에 따라 아무 연고도 없는 담양으로 방향을 틀었다. 
  9월 중순이 넘어서 담양으로 내려왔다. 지인의 추천대로 딸기를 할 생각이었으나 정식이 거의 끝나 있었다. 딸기를 시작하려면 상당한 기간을 기다려야 했다. 기술도 없지만, 지인의 도움으로 육묘를 한다고 해도 최소 6개월가량 놀아야 했다. 육묘를 하지 않고 정식을 한다면 1년 가까이 놀아야 했다. 준비 기간이 있으니 1년까지 가지 않더라도 수개월 동안 놀 수는 없었다.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다. 빨리 할만한 작목이 무엇인지 찾다가 토마토를 알게 되었다. 놀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무작정 토마토 재배에 들어갔다.

대추토마토 출하

처음에는 완숙토마토와 대추토마토를 함께 재배했다. 토경재배였다. 두 가지를 비교해보니 대추토마토의 소득이 높았다. 대추토마토를 집중적으로 하는 게 유리할 것 같아, 완숙토마토는 포기했다. 한 우물을 파는 성격이라 딸기를 하려고 했던 애초의 마음은 접고 대추토마토에 매달렸다. 기왕 재배를 하려면 단위 면적당 수확량이 많은 게 좋을 것 같았다. 나는 토경재배를 포기하고 과감히 고설재배 시설을 갖추었다. 나는 지금도 토마토를 배우는 중이다. 그럼에도 고설재배를 위해 고액을 투자한다고 하니 우려의 시각도 많았다. 지금까지는 성공적인 투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토경재배보다 기본적으로 1.5배가 더 생산되니까 말이다.
  
 내 슬하에는 딸과 두 아들이 있다. 아직 학생이다. 나는 서울에서 살 때도 애들 교육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본인들이 알아서 하기를 바랐다. 그건 담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공부하라는 말보다 본분이 무엇인지, 권리와 의무를 강조했다. 학생의 의무는 공부임을 주지시켰다. 게임을 하거나 어디에 가서 놀던 의무는 다 하고 권리를 주장하라고 했다. 토마토를 재배하느라 자식들에게 크게 신경을 써주지 못했는데, 모두가 담양 생활에 만족해한다. 학원에 보내지 않았는데도 큰아들은 고려대에 입학했다.
  아내와 자식들이 만족한 까닭에 담양으로 귀농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다. 지금은 9동을 재배하고 있지만 차츰 더 늘려갈 것이다. 아직 대추토마토를 완벽하게 알 수 없으니 아직도 묻고 배우는 중이다. 그럼에도 현재 규모에 만족하지 않는다. 규모를 대폭 늘려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안정적인 공급과 유통을 꿈꾸고 있다. 규모를 늘려가는 것이 농업의 경쟁력이라는 판단이 섰으니, 규모를 늘리기 위해 전력을 기울일 것이다. 그 첫 걸음으로 농업법인을 설립하려 한다.   

수확의 기쁨 '대추토마토'

 나의 여생과 함께 할 대추토마토. 결혼할 때 아내는 연지곤지를 바르진 않았지만, 대추토마토를 보면 저절로 연지곤지가 연상된다. 때문에 자동적으로 아내 얼굴이 오버랩된다. 녀석들이 마치 아내처럼 사랑스럽다. 아내에게 쏟은 것처럼 녀석들에게도 사랑을 듬뿍 쏟을 것이다. 또 하나의 반려자니까./ 강성오 군민기자
※ 오필선 귀농인은 1965년생으로 2014년 담양읍 미리산길로 귀농했다.(연락처 010-6230-2100)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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